‘안정 속의 개혁’과 ‘개혁 후의 풍요’를 슬로건으로 건 대선 후보가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모든 변수를 논외로 하고 이 두 구호만 맞대결을 붙인다면 말이다. 안정된 삶을 누리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는 ‘안정 속의 개혁’이란 슬로건이 이상한 위력을 발휘한다. 왜일까? 두 슬로건이 지시하는 구체적인 내용보다 표현 자체가 가진 마법적인 힘 때문이 아닐까?
‘안정 속의 개혁’이란 표현은 현재 내가 가진 것에다 대가없이 작은 무언가를 보태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의미 작용의 비결은 이렇다. 먼저 ‘안정 속의 개혁’이란 표현은 이미 안정과 개혁을 대립적인 의미로 전제하고 들어간다. 이 대비를 통해 개혁은 안정의 반대인 불안의 의미로 자리매김된다. 대개의 사람은 뭔가를 새로 얻고자 하는 성취욕구보다 지금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하는 안전욕구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이 대립구도에서 강조되는 일차적 의미는 개혁의 불안이다. 이 불안은 안전욕구를 자극한다. 이 상태에서 ‘안정’과 ‘개혁’이 공존 가능한 것처럼 조합되면 반사적으로 ‘안정’에 끌린다. 현재의 내 것을 축내지 않는다고 하니 일단 거기에 줄을 서게 되는 게다. 여기에 ‘개혁’이라는 별책부록이 붙으면서 뭔가 새로운 것까지 준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비하면 ‘개혁 후의 풍요’는 뭔가 내 것을 가져가서 나중에 돌려주겠다는 미심쩍은 구두계약처럼 들린다. 그러니 ‘안정 속의 개혁’을 좇는 것은 일견 지혜로운 선택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인간 욕구의 보편적 구조를 연구한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안전욕구→소속감과 애정욕구→사회적 인정욕구→자아실현 욕구의 5단계로 진화한다. 진화의 원칙은 낮은 단계의 욕구부터 단계적으로 충족시켜나간다는 것. 낮은 단계의 욕구일수록 생존에 우선적이지만 가치가 낮고 높은 단계의 욕구는 그 반대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집단적 욕구는 이 욕구의 단계 어디쯤에 와 있을까? 아마도 2, 3, 4단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안전욕구가 나머지 욕구의 성격을 좌우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명문대 간판 밝히는 것은 사회적 인정욕구지만, 그건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조기에 생존경쟁의 안정적 고지를 확보하겠다는 안전욕구의 바탕 위에서 발현되는 인정욕구이다. 또 수많은 향우회와 동지회, 동문회 등으로 나타나는 유별난 집단주의도 그 자체로는 소속감과 애정욕구지만 이 역시 안전욕구를 모태로 한다. 합리적 시스템이 빈약한 상태에서 집단에 소속되지 않았을 때 겪게 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소속감을 찾기 때문이다.
무구한 인정욕구라면 사회적 인정의 대가로 자신의 명예를 그 자체로 내버려둘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몇명이나 있던가? 대부분이 뇌물, 탈세, 이권개입, 기밀누출과 같은 탈법은 물론 공익을 위해 부여된 권리와 그 결과로 얻게 된 경력과 인기를 자본에 매도하는 탈규범적인 ‘환전의 절차’를 거치지 않던가! 환전 행위가 끊이지 않는 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사회적 인정은 쓸모없다는 인식이 한국사회의 속내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 뻔뻔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소속감과 애정욕구도 마찬가지다. 무구한 소속감은 집단의 결속을 위해 구성원들끼리의 공감을 연료로 쓸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배타적 집단주의는 연대를 위해 타자에 대한 적의를 동력으로 쓴다. 이 사나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는 이 뻔뻔함과 사나움의 진원지가 불안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불안의 뿌리는 불신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고 개인끼리의 공감과 소통이 결핍될 때 경쟁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불안을 낳게 마련이다. 불안은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안전욕구를 호명한다. ‘안정 속의 개혁’이 여기에 맞장구친다. 실체 없는 보수의 광풍이 인다. 가진 게 별로 없어 상실의 불안이 없을 법한 사람조차도 여기에 넘어간다. 불안이 깊어 영혼이 잠식당했기 때문일까? 며칠 전 한나라당 예찬론을 펴던 50대 회사택시 운전기사가 떠오른다. 이 아저씨 지금 이대로 안정되면 노후를 어떻게 개혁하시려 그러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