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는 1989년 12월24일 밤 9시부터 1990년 12월24일 밤 10시까지 일곱 혹은 여덟명의 친구에게 벌어지는 사랑과 죽음 그리고 죽음과 희망의 이야기다. 1980년대는 너무나 얄팍하고 심심한데다 대중음악과 영화의 걸작 또한 드물어 도무지 기억할 게 없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대의 마지막 지점에서, 레이건과 부시 그리고 에이즈, 마약, 빈곤의 그림자 아래 살았던 뉴욕의 청춘을 회고하는 <렌트>는 1980년대를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서 보헤미안의 삶을 사는 풋내기 예술가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현대판 <라보엠>에 다름 아닌데, <라보엠>의 미미와 반대로 <렌트>의 미미가 죽음에서 살아남는 것에 영화의 주제가 있다. 현실은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아 한줄기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에 영화 작업을 시작해 대중영화 감독으로 살아남은 크리스 콜럼버스는 <렌트>의 감독에 적격이며, 팝과 로큰롤의 엄청난 흡인력에 더해 <세인트 엘모의 열정> 같은 1980년대 청춘영화의 낭만까지 불러일으키는 <렌트> 극장판은 여러모로 비슷한 텍스트인 <헤어> 극장판에 견주어 모자람이 없다. 국내 상영시 뿌옇던 프린트와 다르게 선명한 영상과 뛰어난 소리를 입혔고 감독과 배우의 매끄러운 음성해설과 알찬 부록을 수록한 DVD는 뮤지컬 입장권, 브로드웨이 앨범,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함께 추억의 상자에 보관할 만한 물건이다. 특히 뮤지컬의 탄생에 얽힌 비화와 영화의 제작 과정을 상세히 수록해놓아 상영시간만 112분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오직 오늘뿐: 렌트 이야기>가 보물이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7년간 준비한 <렌트>의 초연 전날 밤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조너선 라슨이 사후에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받은 사연이 심금을 울린다. <렌트>의 전설이 시작되는 지점에 한 작가의 죽음과 부활이 있었으니, 라슨이 바로 미미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