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들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오타쿠 자체가 하나의 문화권력으로 작용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수들이 존재하고 또 그 취향을 존중해주는 사람들로 구성된다면 세상이 꽤 즐거울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오타쿠란 뜻은 아니다. 오타쿠가 되기엔 내 열정은 작심삼일인데다 게으르기 짝이 없으며, 뭔가를 수집하려는 욕구도 없다. 정작 즐거운 것은, 오타쿠들을 지켜보는 쪽이다. 지난 설 연휴, 일주일간의 도쿄 여행이 즐거웠던 가장 큰 이유도 그곳이 오타쿠들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시부야에 있는 만화 쇼핑몰 만다라케에 갔는데, 생각보다 문화의 소비층이 넓은 것에 놀랐다. 열심히 만화책을 쇼핑바구니에 쓸어담는 초등학생도 있었고, 여고생 교복 코스프레 코너에서 진지하게 가격표를 들여다보던 중년의 아저씨도 있었다. 한국이라면 “변태 아냐?” 하고 눈살부터 찌푸렸겠지만, 도쿄라 생각해서 그런지 그 풍경이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일본의 소비문화가 인상적이었던 건 만다라케에서뿐만이 아니다. DVD숍에서는 변변한 서플먼트 하나 없는 4만~5만원짜리 타이틀이 잘도 팔린다. TV코미디 프로그램은 늘 DVD 판매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음반매장은 ‘들으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사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도대체 저걸 어디다 쓸까, 하는 얄궂은 물건들도 많았다(돌아오지 않는 부메랑은 대체 뭐하러 만들었을까?). 그래도 신기하게 팔린다. 일본이 어떻게 수많은 오타쿠들을 낳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갔다. 거기에는 생산과 소비의 상호작용이라는, 냉혹한 시장경제원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오프라인 문화시장이 시들한 요즘, 이것이 팔릴 만한 상품을 만들지 못하는 생산자의 문제인지 인색한 소비자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딜레마일 수도 있다. 다만 문화의 소비는 줄었는데 비평은 넘쳐나는 세태가 좀 아이로니컬하다. 문득 얼마 전 ‘무릎팍 도사’에 나온 신해철 교주의 주옥같은 말씀이 떠오른다. “음반을 구입해서 아티스트와 직접 교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욕이나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한마디로 닥치라는 거죠.” 하여 마지막 음반을 언제 샀는지 까마득한 나부터 당분간 닥치고 자숙의 시간에 들어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