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아무도 규정하지 않았던 19세기 말, 인간의 신체와 접촉은 기록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후 인간의 몸은 필름 그림자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하면서 관객은 대상의 나열보다 그것과 이야기의 결합을 원했으며, 윤리와 종교라는 억압과 수치라는 형벌이 인간의 육체를 드러내는 데 제약을 가한 결과, 사진과 회화에 등장하는 모습 그대로의 육체를 필름 위에선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신체의 아름다움은 옷과 이야기 뒤로 숨어야만 했다. 얼마 전 DVD로 출시된 제임스 브로튼과 케네스 앵거의 작품들은 인간의 신체와 시의 기록으로서의 영화가 아방가드르영화와 언더그라운드영화 속에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브로튼의 영화가 주류사회의 관습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되찾은 사랑과 평화 그리고 자유의 시적 표현이라면, 앵거의 영화는 게이의 정체성을 사춘기의 미성숙·마법·오페라·팬터마임·팝 등과 버무려놓은 꿈 혹은 환상이다. 둘은 ‘쾌락’이란 주제를 공유했는데, 그것은 육체와 정신이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사람은 때론 신비주의와 환각에 빠진 순간을 묘사하기도 했지만, 그들 영화의 가장 순수한 즐거움은 이야기의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은 유연함이 시적 운율(브로튼은 자신의 시를 영화에서 낭독하는 걸 즐겼다)과 음악 위에서 넘쳐흐를 때 최고조에 달한다. 브로튼의 ‘쾌락의 정원’과 앵거의 ‘쾌락의 궁전’은 영화가 잃어버린 낙원에 다름 아니다. <제임스 브로튼 작품집>은 <쾌락의 정원> <침대> <드림우드> <헌신> 등의 유명 작품을 포함한 전작을 수록했으며, 브로튼의 해설과 시를 모은 책자가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영화가 가장 자극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했던 <불꽃놀이>와 <토끼의 달> <쾌락 궁전의 창립> 등 전기 작품만 수록한 <케네스 앵거 작품집 Vol.1>은 새로 복원된 뛰어난 화질을 자랑하는 것 외에 앵거의 기억력과 여전한 정력이 놀라운 음성해설, 마틴 스코시즈의 소개와 사진 등으로 채워진 화려한 화보집 등을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