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천생 착한 놈의 꿈
“악역은 한번도 못해봤어요.” <꽃피는 봄이 오면> <연개소문> <외과의사 봉달희> <대장금> <아일랜드> 등의 수많은 드라마와 웬만한 재연 프로그램에 줄기차게 얼굴을 비춘 이승훈의 말이다. 심지어 범죄가 소재인 <죄와 벌>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수사관이거나 법조인이거나 참고인일 뿐 한번도 범인이었던 적이 없다니 할 말이 없다. 사진 찍는 게 여전히 어색하다면서도 사진기자의 주문에 따라 열심히 포즈를 취하는 그 모습을 보고,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어색해도 길거리에서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한다는 그 말을 들으니 그의 ‘만년 선인(善人)’ 처지가 이해된다. 꽤나 큰 규모의 영화에 꽤나 큰 비중으로 캐스팅되었다가도 재연 프로그램 출연 경력을 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 제작진이 촬영 직전 연락을 끊은 뒤, 팬카페를 폐쇄한 것이 몇번이던가. 이제는 팬들의 마음이 고마워 차마 그러지 말아달라는 말도 못한다는 형편이라니, “사실 저 정말 악해요”라는 말은 아무래도 믿기 힘들다. 어릴 때부터 백댄서, DJ, 행사사회 등을 통해 담력을 길렀고, 서울예대 연극과 재학기간과 졸업 이후 몇년간 각종 뮤지컬 및 연극 무대에 서면서 연기의 기본기를 닦았으며, 일반 드라마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재연 프로그램을 통해 고도의 순발력과 암기력을 몸에 익힌 그는 재연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알린 다른 배우들보다 활동무대가 넓은 편이다. 재연 프로그램의 주연과 드라마의 단역 사이에서 드라마를 택하는 건 기본이고, 수십줄에 달하는 대사를 한달음에 읊어야 하기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단역이 펑크나면 이를 메우기 위한 지방 출장도 마다않는 성실함 덕에 이제는 드라마에서 맡게 되는 역할의 비중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그와 함께 상대배우와 호흡을 주고받으며 반응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쁜 그의 올해 목표는 방송일을 정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나 동경하던 무대에 조만간 다시 서는 것, 그리고 영화 출연의 기회까지 만드는 것이다. 쉽게 사라지거나 타성에 젖지 않는 오랜 꿈을 되새기는 그의 눈이 한없이 선한 기운을 지우고 ‘독하게’ 빛난다.
글: 오정연
이중성, 즐겁게 연기하며 케 세라세라
그는 매일 만난 친구처럼 낯익다. 재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배우들 가운데 가장 친숙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볼 깊숙이 생기는 보조개마냥 수줍은 성격의 이중성(30)은,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못 알아봤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어제도 헬스장에서 샤워하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어디서 뵀죠, 그러더고요. 당황한 나머지 예, 하면서 그냥 지나갔어요.” 얼굴이 널리 알려진 까닭에 괴롭기도 하지만 실상은 즐겁고 고마운 마음이 더 클 듯싶었다. 팬카페 회원이 2만명을 넘을뿐더러 사인회를 열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 오랫동안 팬이어서 지금은 동생같이 느껴지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해요. 오래된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에요.” 재연 프로그램인 <솔로몬의 선택>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등으로 유명해진 그지만 그 출발점은 뮤지컬 배우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뮤지컬 <가스펠>을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심사숙고 끝에 뮤지컬 배우의 길을 선택했고 <올 댓 재즈> <2004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 <스노우 드롭> 등에 합류했다. 뮤지컬로 기본을 닦은 연기 활동은 브라운관에서도 빛을 발했다. 재즈댄스 강사, 안무가 경력을 지녔던 그는 발레극 형식을 표방했던 박효신의 뮤직비디오 <좋은 사람>에 출연할 기회를 잡았고 이후 잇따라 방송일이 날아들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부터 <그 여자의 선택>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까지의 경력은, 그러나 특유의 성실함과 순발력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들었을 터였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어린 군사 역할을 맡았는데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을 8시간 동안 찍었어요. 당시 조감독님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출연에 도움을 주셨죠.” 그동안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그는 근래 조금 발걸음을 늦췄다. “요즘처럼 한가했던 적이 없다”면서도 동생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준비 중이라니 또다시 바빠질 내일이 분명 머지않은 듯하다. “머리 안 아프고 세상일을 잊을 수 있는 영화를 즐겨봐요. <금발이 너무해> 같은 영화가 좋아요. 가볍고 즐거운 연기를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재연 프로그램 출연 경력으로 영화 오디션에 번번이 낙방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행복한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뒤지지 않기에 그의 앞날은 여전히 밝다.
글: 장미
조선옥, 헬로우 신인배우
재연 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 발을 들인 지 두달 남짓. 조선옥(28)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여섯 배우 중 가장 경력이 짧다.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전화 받고 무척 반가웠어요.” 뽀얀 얼굴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기 때문일까. 스스로의 표현대로 “울고 짜고 버림받는” 비련의 주인공으로 주로 등장했지만 사실 그녀는 야무진 사람이다. 조목조목 설명을 이어가는 말투는 물론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초콜릿을 쥐어주는 손길에서도 그런 느낌이 우러났다. “함께 출연하는 분들은 우린 그냥 배우예요, 라고 자주 말씀하세요. 재연 배우란 꼬리표를 그닥 기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뭐든 할 준비가 돼 있어요. 드라마든 영화든 어떤 연기라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송 일에 뛰어들었던 만큼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TV에서 딸을 보는 즐거움에 푹 빠진 부모님은 어느새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그리고 <별난 남자 별난 여자> <하얀 거탑>, 방영을 기다리고 있는 <헬로우 애기씨> 등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는 사이 팬카페도 생겼다. “2004년 <스펀지>에서 특집으로 3분가량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그때 처음 방송에 출연했어요. 본격적인 연기는 처음이라 많이 배워요.” 아직 다른 배우들에 비해 출연료가 적고 대사 한마디를 던지기 위해 경남 하동까지 내려가는 일도 있지만 그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인임에도 제법 오랜 시간 브라운관을 독차지할 수 있을뿐더러 고마운 사람들도 잔뜩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재연 프로그램 출연이 독이 될지 모른다는 선배들의 우려에도 오히려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일이 되면 어떤 역할이든 하고 싶어요. 저는 아무것도 안 가려요. (웃음)” 그렇다고 취미도, 특기도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건 아니다. 댄스스포츠, 재즈댄스, 태권도는 물론 파트너를 자처해 공짜로 살사까지 배우는 열정이라니, 그 여린 외모 아래 어떤 알맹이가 묻혀 있을지 궁금했다. “딱 한 줄기의 눈물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노련한 분들은 정말 잘하시는데 저는 진짜라고 느끼지 않으면 눈물이 안 나와 힘들어요.” 연기의 어려움에 대한 고백도 잠시. 우는 얼굴을 찍고 싶다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주르륵 눈물을 떨어뜨린다. 재연 프로그램을 넘어 드라마, 그리고 영화까지 욕심 많은 그녀가 끝없이 뻗어나가길 기대한다.
글: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