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아이돌> 시즌3에서 7위로 탈락했던 제니퍼 허드슨은 <드림걸즈>에 출연,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흑인 여가수 최초로 <보그> 표지 모델을 장식했다. 시즌4 우승자인 캐리 언더우드는 데뷔앨범으로 5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데 이어 그래미 최우수 신인상과 컨트리 부문 최우수 여성보컬상을 수상했고, 시즌1 우승자인 켈리 클락슨은 지난해 여성 팝보컬상과 최우수 팝보컬앨범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음반 판매순위에는 지금까지의 앨범 판매가 170만장이 넘는 크리스 도트리를 포함해 캐서린 맥피, 켈리 피클러, 테일러 힉스와 같은 시즌5 본선 진출자들과 판타시아, 캐리 언더우드, 루벤 스터더드, 클레이 에이킨, 그리고 켈리 클락슨 같은 이전 시즌 참가자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음반산업에도 영향력 발휘
리얼리티 쇼의 천국인 미국에서 <아메리칸 아이돌>은 단순 쇼오락 프로그램으로서의 인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음악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해 <아메리칸 아이돌>은 같은 시각 생방송한 제48회 그래미상보다 두배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인 시즌6은 좋은 말만 하는 데 재능이 있는 심사위원들인 랜디와 폴라마저 비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본선 진출자들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타 방송사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의 밥줄을 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대선에서 부시가 얻은 표보다 많은 6300만표를 받아 지난 시즌 우승자가 된 테일러 힉스는 <피플>이 발표한 ‘가장 매력적인 독신남’ 1위에 꼽혔다. 평균 3천만명의 시청자, 부동의 시청률 1위. <아메리칸 아이돌>은 우승자가 아닌 본선 진출자들과 심사위원까지 아카데미와 빌보드와 엔터테인먼트 잡지를 휩쓸게 만드는 것이다.
온스타일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아메리칸 아이돌>(시즌5)은 영국의 <팝 아이돌>을 모태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2002년 6월11일 첫 방영을 시작한 미국의 신인가수 선발대회다. 미국 폭스 방송사에서 제작, 현재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약 40개국에서 방영되고 있으며, 쇼가 낳은 스타들의 음반 역시 전세계적으로 판매될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재능발굴 프로그램들을 양산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핵심 스탭들은 총연출자인 사이먼 퓰러(스파이스 걸스와 S Club 7을 탄생시킨 주인공)와 <유 캔 댄스>라는 댄서 선발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던 연출자 나이젤 리스고를 포함해 영국인으로 구성되었다. 특징은 ‘인터랙티브 리얼리티 게임쇼’라는 점인데, <아메리칸 아이돌>은 우승자와 탈락자를 결정하는 칼을 시청자의 손에 맡긴다는 뜻이다. 심사위원인 사이먼 코웰과 폴라 압둘, 그리고 랜디 잭슨은 후보들을 지역예선과 할리우드 예선을 통해 추려내지만, 일단 본선이 시작되면 각 후보의 노래 실력에 대해 평을 하는 것 이상으로 후보자의 탈락이나 잔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진행은 라이언 시크레스트가 맡고 있으며, 진행자와 심사위원은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인 시즌6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거
심사위원인 사이먼 코웰, 폴라 압둘, 랜디 잭슨 그리고 사회자 라이언 시크레스트(왼쪽부터).
<아메리칸 아이돌>은 미국적인 성공 신화,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클레이 에이킨이나 캐리 언더우드는 문자 그대로 ‘옆집 소년 소녀’ 같은 인물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스타들이 재능이나 외모 면에서 한껏 가꾸어진 뒤 TV에 등장하는 데 반해 이들은 교실 한구석에서 말없이 앉아 있던 소년의 모습, 부모님의 목장에서 일을 돕던 선량한 금발머리 소녀의 모습으로 등장해 시즌이 무르익을수록 피어난다. 보컬 코치와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들쭉날쭉하던 재능이 다듬어지고 외모는 좋게 봐야 귀엽던 수준이었던 후보들마저 멋진 스타로 탈바꿈한다. 게다가 시청자 참여가 미국 최고의 신인을 낳는다는 방식 역시 인기의 요인이다. 사이먼 코웰이 아무리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릴 만큼 비난을 퍼부어도 시청자가 충분한 표를 던졌다면 그 후보는 살아남는다. 노래 실력과 외모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코웰과 달리 시청자는 후보의 친근함과 인간적 매력에도 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심사위원과 진행자의 캐릭터도 <아메리칸 아이돌>의 인기에 한몫한다. 코웰은 바른말과 과도한 까대기를 오가는 입놀림으로, 압둘은 (주로) 남자 후보가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면 눈물도 불사하는 따뜻함으로, 잭슨은 “여어, 친구” 하는 식의 두루뭉술한 칭찬으로 객석의 비난과 환호를 끌어내고, 라이언 시크레스트는 연예 프로와 라디오를 진행하던 입담 그대로 생방송을 이끌어간다. 특히 시즌1, 2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강조되고 있는 지역 예선에서의 ‘음치 퍼레이드’는 <아메리칸 아이돌>에 유머를 더한다. 최근에는 노래를 잘하는 후보를 발견하는 순간만큼이나 강조되는 것은 노래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실력으로 등장해 “내가 아메리칸 아이돌이다”라고 선언한 뒤 코웰의 “내가 살아생전 들어본 중 가장 끔찍하다”는 말을 듣고 방송 불가한 욕설을 퍼붓는 후보들이나, 괴이한 옷을 입고 등장하거나 기구한 사연을 늘어놓는 후보들, 나이 제한인 28살을 넘긴 정도가 아니라 그 또래의 조카나 자식이 있을 법해 보이는 사람들이 “난 25살”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시즌6의 지역 예선에 참가한 인원수는 10만3천여명으로, 이중 173명이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갈 수 있는 표를 닮은 노란 티켓을 받았으며, 이중 남녀 12명씩 24명만이 준본선에 해당하는 무대에 설 자격을 얻는다.
쇼가 끝난 뒤 진짜 쇼가 시작된다
실력만으로 우승을 점칠 수 없으며, 실제로 우승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아메리칸 아이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지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무조건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매회 주어지는 특별한 주제에 맞춰 선곡을 해야 하는데, 이때 자신과 안 맞는 장르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운이 없어서 탈락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시즌5의 맨디사가 ‘컨트리’ 주제에서 떨어진 데 대해 코웰은 “좋은 가수를 잃었다. 만일 ‘21세기 여성 디바’ 같은 주제였다면 맨디사는 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역 예선 때 절대 가능성이 없다고 코웰이 장담했던 테일러 힉스는 우승했다. 예선에서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항의하던 브리트넘 쌍둥이는 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수배 중이었음이 밝혀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예측 불가함은 한주 평균 3500만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모았는데, 전년도에 비해 14% 오른 수치였다. 게다가 시청자의 마음을 끄는 게 비단 노래 솜씨에만 있는 게 아님을 입증하는 투표 결과 때문에 “후보들이 정치가가 되어가고 있다. 언제 놀란 표정을 지어야 할지, 슬프거나 기쁜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어떻게 관객에게 어필해야 좋은 점수를 따는지 알고 있다”.(라이언 시크레스트)
그리고 쇼가 끝나면 진짜 쇼가 시작된다. 우승을 거머쥐었다고 해서 그 이후의 성공까지 보장받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코웰의 말대로 “<아메리칸 아이돌>은 훌륭한 발판이 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쇼가 끝나고 거품이 꺼지면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를 그제야 알 수 있다.” 클레이 에이킨은 시즌2에서 준우승했지만 우승자인 루벤 스터더드보다 100만장이 넘는 데뷔앨범 판매고를 올렸고, 시즌5의 승자는 현재로서는 우승자인 힉스가 아니라 4위로 탈락한 크리스 도트리다. 삐걱거리며 출발한 시즌6도 스타(들)를 낳을 것이고, 내년이면 또 다음 시즌이 시작될 것이다. 독설가 코웰의 <아메리칸 아이돌>과의 계약은 현재 2010년까지라지만, 아무도 미리 점칠 수 없는 신화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메리칸 아이돌>의 성공은 이어질 것이다.
황금마차에 탄 아이들
<아메리칸 아이돌>이 낳은 스타들 전과 후
클레이 에이킨 Clay Aiken
클레이 에이킨은 <아메리칸 아이돌>로 데뷔하던 당시, 방 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할 듯한 인상의 비쩍 마른 소년 이미지가 강했다. 사실상 ‘변신스토리’(이전과 이후의 대비가 엄청난)와 ‘재능선발대회’라는 미국 리얼리티 쇼 최고의 인기 메뉴를 합해놓은 것 같은 성공담의 주인공이다. 시즌2 준우승에 그쳤지만 데뷔앨범 <Measure of a Man>을 280만장이나 팔아치웠다(우승자 루벤 스터다드의 데뷔작보다 100만장이 더 많은 수치다). 지난해 방영된 시즌5에서는 오랜만에 에이킨이 등장해 <Don’t Let the Sun Goes Down on Me>를 열창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21일 LA에서 있었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나타난 그는 13kg이 넘게 불어난 모습이어서 충격을 주기도. 에이킨의 크리스마스 앨범인 <Merry Christmas With Love>는 130여만장이, <A Thousand Different Ways>는 50여만장이 팔렸다.
테일러 힉스 Taylor Hicks
마이클 맥도널드를 연상시키는 목소리의 소유자. 사이먼 코웰은 할리우드 오디션 때 “누가 보면 참가자 아버지라고 생각하겠다”고 했고, 라이언 시크레스트는 그가 “전형적인 아이돌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라고 평한 바 있다. 압둘의 압도적인 지지와 호감가는 성격으로 인해 점차 큰 인기를 얻어 초반부터 우승이 점쳐지던 캐서린 맥피를 누르고 우승했다. 목소리에 어울리는 노래를 못 만나면 가라오케 가수처럼 보이는 게 단점. <피플>에서 뽑은 ‘가장 매력적인 독신남’ 1위에 뽑히기도 했으나 정작 데뷔앨범을 발표한 뒤의 성적은 같은 시즌 4위 탈락자 크리스 도트리(160여만장 판매)의 절반에도 못 미쳐 현재 60만장 선의 판매를 기록했다. 현재 4월 말까지 미국 곳곳에서 투어 일정이 잡혀 있다.
캐서린 맥피 Katharine McPhee
보컬 코치인 어머니에게서 일찌감치 노래 교습을 받았던 맥피는 시즌5에서 크리스 도트리와 더불어 가장 안정적인 노래 실력을 선보였고 2위를 차지했다. 시즌 중반 <I Have Nothing>을 부르던 중, 드레스 단추가 두두둑 떨어지는 사고 덕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역 예선을 거치고 본선, 그리고 <아메리칸 아이돌> 출연이 끝난 뒤 계속 살이 빠지며 아름다워진 덕에 가수로서의 인기뿐 아니라 셀러브리티로서의 인기도 구가하고 있으며, 최근 <어글리 베티>의 한 에피소드에서 캐서린 맥피 본인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데뷔음반인 <Katharine McPhee>는 판매순위 2위 선을 유지하며 20만장을 돌파했다. <아메리칸 아이돌> 이전에 뮤지컬 무대에 선 경험 등이 있어 차후 연기자로 활동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캐리 언더우드 Carrie Underwood
오클라호마의 작은 동네 출신으로 순박한 동네 소녀 분위기로 컨트리를 소화해내는 능력 덕에 사이먼 코웰이 본선 첫 무대 이후 바로 우승을 점쳤다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미국적인 음악인 컨트리를 젊은 음악 팬들에게 팔릴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공을 인정받았다. <Some Hearts>가 현재까지 500만장 가까이 팔려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가수의 데뷔작들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그래미에서 신인상과 컨트리 부문 여성보컬상을 받은 것을 포함해 많은 음악상들의 컨트리 부문을 휩쓸었다. 그래미 수상 뒤 언더우드는 <아메리칸 아이돌>에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컨트리를 계속할 것임을 밝혔는데, 현재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다.
판타지아 바리노 Fantasia Barrino
시즌3 우승자. 고등학교를 중퇴한 미혼모였던 삶에서 극적 전기를 맞았다. <드림걸즈>에서 제니퍼 허드슨이 연기했던 역할로 물망에 올랐다고 알려져 있다. <드림걸즈>에 이미 출연이 확정된 상태였던 제이미 폭스가 바리노를 지지한 것은 물론, 비욘세도 판타지아를 좋아한다는 발언을 한 적 있으며 덴젤 워싱턴이 그녀의 스크린 테스트를 지도했었다고. 벤 스틸러와 니콜 키드먼 같은 스타들이 바리노의 팬임을 밝혀 그 인기를 실감케 하기도 했다. <인생은 동화가 아니야>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데뷔앨범 <Free Yourself>는 미국에서 U2, 켈리 클락슨(시즌1 우승자), 그웬 스테파니와 같은 주에 발매되었음에도 꾸준한 판매를 기록해 성공을 거두었으며, 두 번째 앨범 <Fantasia>는 현재 30만장가량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