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술은 말걸기에서 출발한다. 몸으로, 말로, 글로. 며칠 전 회식 자리였다. 소맥, 양맥 칵테일 이어달리기로 사위가 혼미해진 게 대략 새벽 2시. 낼 후회하기 전에 지금 집으로 가야 해, 라고 아득한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건만 발걸음은 후배가 앞장선 클럽으로 향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살아남은 자는 남2 여2. 대충 어색한 몸놀림이 시작된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건장하고 기장 긴 두 사내가 우리 사이로, 아니 후배 여기자들 앞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세는 매우 적극적이고 노련했는데 부비부비 준비운동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당황스러웠던 건 그 준비동작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남자2를 조금도, 아니 전혀 의식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애초 파트너가 아니었으니 선택은 여자가 하는 게 맞다, 는 패배의식에 휩싸여 전투를 포기하고 그냥 자리로 돌아왔다. 약간 화도 난 듯했다. 다행히 어여쁜 후배가 나를 다시 무대로 이끌었고(너 사회생활 좀 되겠다), 그 뒤로 몸싸움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후에도 불시에 끼어들고는 했다는 말이다. 대략 2시간 동안.
다음날, 어머니 생신 식사 자리. 형수와 누나가 학부형으로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 물어보는 게 예의에서 벗어나는 짓이라는 대목에서 귀가 쏠렸다. 혹시라도 물어보면 ‘어머 그런 건 물어보는 게 아냐’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다보니 대화도 연예인 같은 제3의 화제만 떠올린다, 자기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등등. “그래도, 각별한 이성 친구한테는 좀 다르겠죠?” 했더니 형수가 고개를 단호하게 가로젓는다. 조카를 쳐다봤다. 부인하지 않는 걸 보니 맞긴 맞나보다.
보고 들었건만 곧이곧대로 믿어지진 않았다. 나의 말걸기 방식과 사뭇 달라서였을 거다. 하나는 너무 노골적이고, 또 하나는 너무 계산적이다.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방식은, 하고 자문하다 허걱,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아직 그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은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라는 ‘연애편지’. “저는 요즈음 소설을 읽거나 TV드라마를 보면서…”로 시작되는 청와대브리핑의 그 글을 읽고나서 약간 감동먹었더랬다. 이른바 경직된 진보를 꾸짖는 유연한 진보론의 논지에 적극 공감해서는 아니다.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정치행위를 하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더더욱 회의적이다. 다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사적인 과거 경험과 느낌을 담아 과감하게 걸어온 말투에 마음이 움직였다. 말하자면 효율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어떤 낭만성. 약간은 도발적이며, 약간은 감상적이며, 약간은 고백적인. 그래서 내겐 연애편지 비스무레하게 읽혔다. 향후 20년간 이런 식으로 말거는 대통령을 또 볼 수 있을까.
결국 난 노무현과 한통속이란 말인가. 세뇌하자. 좀더 노골적이고 계산적으로, 좀더 계산적이고 노골적으로…. 에라이!!
P.S. 6893개였다. 40일 만에 출근해 마주친 메일의 개수. 왜 씨네21을 그만두려고 하느냐는 항의 혹은 연모의 메일은 한통도 없었다. 99% 스팸. 40일 전에 여기서 고별사를 날렸지만 구렁이 담넘어가듯 다시 일해도 되지 않겠나 하는 위로로 여기기로 했다. 곡절을 얘기하긴 남세스럽고, 여러분 반갑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