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천적으로 냄새를 맡지 못한다. 아니, 냄새의 형태를 아예 모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바지에 변을 보셨을 때 ‘머리가 좀 아프네’ 하고 느낀 게 내 평생 느낀 냄새의 전부이다. 이러니 향수는 물론, 소독차 냄새, 커피 향 등 아예 냄새와 관련된 기억이 있을 리 없다. 냄새에 관한 기억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실연 뒤에 상대의 냄새로 그의 기억을 함께 떠올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내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냄새에 관한 기억을 꾸며내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운 기억들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비 냄새가 난다며 창밖을 가리키거나, 꽃 향기 좀 맡아보라며 꽃을 내밀었을 때 난 당혹함을 감추고 ‘음, 좋다!’ 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친구들이 하수구 냄새나 비린내를 맡고 코를 쥘 때 나도 시간차를 두고 코를 쥐었다. 반에서 누군가 방귀를 뀌었을 때 그 냄새를 추적하는 아이들이 마치 셜록 홈스처럼 보였고, 냄새 난다며 화장실 앞을 피해가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난 늘 감기 걸려 코가 막힌 아이였다. 물론 병원에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국내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고 했다. 거의 10년 전쯤의 일이다. 그 이후 나는 내 안의 콤플렉스를 계속 키우고 있었다. 눈이 머는 전염병이 온 도시를 휩쓴다는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처럼 코의 감각이 둔해지는 전염병이 세상에 퍼졌으면 했다. 코가 아닌 맛으로 냄새를 완벽히 맡을 수 있었으면 했다. <대장금>의 장금이가 미각을 잃었을 때의 슬픔을 코미디언들이 희화화할 때 나는 구석에서 시린 가슴을 잡고 있어야 했다. 후맹(嗅盲)은 내 인생 최대의 적이었다.
하지만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 특별한 능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오감(五感) 중 하나를 상실했지만 대신 다른 감각에 익숙하다. 그것은 공포에의 감각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척하느라 거짓말이 늘었다.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타인과 같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거짓말은 공포심을 조장한다. 거짓말이 언젠간 들통날 거라는 심리적인 불안뿐 아니라 현실적인 불안에서 온 공포였다. 특히 가스폭파사건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스가 새어나와도 모르고 집에 있다가 이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시어머니한테 구박을 받지는 않을까? 자식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게 되지는 않을까? 나중에 자식이 커서 술, 담배를 하고 돌아다녀도 관심조차 줄 수 없는 나쁜 엄마가 되지는 않을까?
불안과 공포는 나를 점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고 음침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었다. 스스로를 속이는 데 익숙해지자 남을 속이는 것도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소설가가 된 이유도 실은 내 결핍감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핍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특별한 위치에 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애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장애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날 홍보할 생각도 없고 그로 인해 동정심을 사고 싶지도 않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기억해주기 바란다. 난 아직 후각장애가 정식으로 장애 등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불편한 진실이 사람들에게 포용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 그러다보니 글을 쓸 때는 딱 세 가지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즐거운가? 필요한가? 절박한가? 세상에는 나처럼 평생 꽃 향기를 한번만이라도 맡아봤으면 하는 소망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절박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글, 세상에 꼭 필요한 글을 쓰는 것이 나의 두 번째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