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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팬심의 딜레마
박혜명 2007-03-16

일 디보 내한 공연에 갈 기회가 있었다. 초대에 의해서였다. 팝페라가 취향이 아니어서 일 디보 노래는 한곡도 들은 기억이 없다. 공연장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도착해보니 외벽에 실물 크기를 넘는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국적도 궁금하지 않은 지상 최대 느끼남 4인조. 개중 누가 제일 느끼한가를 두고 동행한 후배 기자 K와 떠들며 웃었다. 우리는 R석 앞자리에서 관람했다. 아무렇지 않게 수시로 남발되는 느끼한 미소들과 취향이 아닌 음악 때문에 집중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무대 안으로 빨려들게 된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맘에 드는 멤버를 발견했다. K는 졸기 시작했고 내 눈은 초롱초롱해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절박하게 앙코르를 외쳤음에도 공연은 엄청난 종이꽃가루 속에 피날레를 맞이했다. 나는 내 취향의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부끄러워 무대 앞으로 뛰쳐나가지는 못했다. 일 디보는 팝페라계의 동방신기였다. 예상치 못했던 아이돌 무대에서 나는 큰 즐거움을 얻었다. 걱정이 됐다. 그 무렵 나는 동방신기의 두 번째 한국 콘서트를 보러 가려고 예매를 마친 상태였다. 관심없던 일 디보 공연의 후유증이 이 정도라면 동방신기 콘서트는 갔다가 심장이 터져 죽어 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콘서트에 지난 주말 다녀왔다. 스탠딩석이 좋다는 주변 팬 동지들의 정보로, 아는 동생에게서 스탠딩 표를 양도받았다. 중앙 구역은 아니고 사이드 구역이었다.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방송에 나왔을 때 늘 서 있는 자리쪽이라 안심하고 있었다. 공연 내내 나는 그 멤버를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들이 메인 무대에 있을 때는 내 구역이 너무 가장자리인데다 그 멤버의 모습이 무대 구조물들에 가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고, 그들이 王자 모양의 돌출 무대를 미친 듯이 휘젓고 다닐 때는 그 멤버가 기가 막히게 내 구역으로 오지 않았다. 거리감을 해소해 보려고 스탠딩 구역 안을 여기저기 다녀봤다. 가끔씩 전광판을 통해 몇 배 크고 선명한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러 거길 간 건 아니어서 나쁜 시력으로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그 멤버를 제대로 본 건 공연이 끝나갈 무렵에 딱 한번이었다. 기적적으로 내 구역 쪽에 왔다. 아니, 지나갔다. 말 그대로 지나가서 다른 먼 곳에 가 멈추었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득하고 희미하게 사라지더니 엄한 데 가서 놀고 있었다. 공연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우울했다.

나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그 멤버와 콘서트장 안에서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기를 원했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하며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인지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 그뒤 며칠간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넋을 놓고 있었다. 지금도 속상하다. 하지만 이게 연애가 아니다보니 원망할 대상조차 없다. 네가 나를 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너에게 화를 낸다는 인과관계가 여기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팬이고 이건 팬심일 뿐, 이라는 당연한 결론조차 피하고 싶을 만큼 복잡하고 비참한 감정이다. 일 디보 공연이 마냥 즐거웠던 건 내가 그들의 팬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5월에 있을 동방신기 일본 투어에는 갈 계획이 전혀 없다. 만에 하나 공표가 생기면 100만원 받고 옥션에 팔아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