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코미디를 보면, 여자주인공이 가장 티격태격 싸우는 상대가 남자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같은 사랑이야기라고 해도 멜로드라마와 로맨틱코미디가 다른 점은, 눈물을 줄 것인지 웃음을 줄 것인지에 있고, 로맨틱코미디의 전통을 시작한 스크루볼코미디에서 이미 ‘싸우다가 정드는’ 남녀 주인공 캐릭터는 탄탄히 자리잡았다. 아니, 그 시작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로맨틱코미디에 아무리 잘생긴 남자가 나와도, 극 초반에 여주가 아무리 좋아해도, 둘 사이에 티격태격이 없으면 그 남자는 남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은 꽃미남 애쉴리를 좋아하지만, 얘기가 전개되는 걸 보고 있으면 무례하고 잘났고 자신만만한 레트쪽에 스칼렛의 마음이 기운다. 캔디는 안소니가 아닌 테리와 사랑에 빠진다. <다운 위드 러브>도 마찬가지다. 바바라는 싹퉁바가지 캐처의 무례함에 치를 떠는 것 같지만, 관객은 ‘저것들이 언제 엉겨붙을지’를 카운트다운하게 된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서로 싫어하지만, 다아시는 단점밖에 없는 것 같던 엘리자베스에게 ‘알 수 없는’(사랑에서는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화학작용이 중요하다) 호감을 느끼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찬가지다. <오만과 편견>의 현대판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도, 다니엘과 브리짓이 잘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티격태격은 브리짓과 마크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왜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되는 걸까. 몇 가지 추측을 해보자면 1)몹시 끌리는 게 무서워서 비호감을 가장한다. 2)비호감이 아주 강렬해서 나중에는 점점 좋아질 수밖에 없다 3)남주랑 여주니까. 성공률 높지 않은 ‘연애계’에서 생활하다 보니, 결론은 3번이다. 왜냐하면, 실제 상황에서 싹퉁바가지는 그냥 싹퉁바가지이기 때문이다.
재수없던 인간이 갑자기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실제상황에서는 많지 않다. ‘잘생기고 돈도 많고 알고 보면 착하지만 겉으로만 냉정한 척하는’ 사람은 영화에나 있고, 실제로는 잘생겼으면 멍청하고, 돈이 많으면 바람둥이고, 냉정한 인간은 뼛속까지 차갑다. 이러니 내 인생의 남주를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