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동그란 음표를 연주하듯 맑고 경쾌한 리듬이 입가에 감돈다. 순정 만화에서 톡 튀어나온 듯한 이름이지만, 가는 펜으로 조심스레 그려낸 듯한 유아인의 외모는 사실 동화적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소녀들의 마음을 꼭 사로잡았던 ‘얼짱 고딩’은 곧 그에게서 예쁜 아이돌 이상의 가능성을 읽어낸 사람들을 만났다. 노동석 감독은 “외모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인 내면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정윤철 감독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광적인 느낌까지 변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고 유아인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향해 총을 겨누는 종대(<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여과되지 않은 감정을 거칠게 내뱉는 용태(<좋지 아니한가>)를 거치며 마냥 곱던 소년은 이제 바람 같은 청춘의 옷을 입었다. 흘러갈 방향을 탐색하며 자유로이 여행 중인 그 푸른 바람을 찾아줄 7개의 나침반을 놓아봤다. 붙잡을 수는 없지만, 느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테니.

<좋지 아니한가>의 정윤철 감독님과는 <말아톤> 오디션 때 처음 만났어요. 제가 <반올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아 결국 영화에 참여하지 못했죠. 그런데 그때 감독님께서 저를 찍어놓으셨대요. <좋지 아니한가>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야 PD님이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감독님이 “용태 역은 아인이니까 건드리지 마라”고 했다고. 뒤늦게 알게 됐지만 오히려 잘된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신인인 저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겠죠? (웃음)

연기를 한다는 것은 인물을 입는 것과 같아요. 그 사람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나와 다른 부분, 내 가치관에서 벗어난 부분을 나 자신에게 진짜라고, 진심이라고 설득하는 거예요. <좋지 아니한가>의 용태는 그런 면에서 쉽지 않았어요. 자신이 전생에 왕이라고 생각하는 엉뚱한 아이였으니까. (웃음) 그 엉뚱함이 억지로 꾸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배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려웠죠. 저 스스로 납득이 안 돼서 테이크를 20, 30번 간 적도 있어요.

연예인이 되고 싶었어요. 정말 막연하게. 고1 때 교문 앞에서 캐스팅됐고, 무작정 혼자 서울로 올라왔어요. 물론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죠. 근데 저는 제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안 듣는 타입이거든요. 아니, 아예 들리지가 않는다고 해야 하나요. (웃음) 그런데 이제는 연예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싫어졌어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싫고. 솔직히 저는 그냥 연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반올림>은 저에겐 약이자 독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큰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연기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나이 때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잃어버린 것도 같아요. 배우가 아니라 그냥 19살 애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물론 촬영할 때는 마냥 좋았죠. 10대 아이들이 좋아해주고, “오빠!” 해주고 얼마나 좋아요. (웃음) 근데 끝나고 나서는 그런 것들로부터 나 스스로 멀어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노동석 감독님은 제가 평생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에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제 첫 영화이기도 했지만, 정말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고,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깊이까지 저 자신을 끌어준 영화였어요. 제가 앞으로 남들이 인정해주는 배우가 되건 안 되건 배우를 하고 연기를 하고 있다면, 매 순간 평생 감사드려야 할 것 같아요. 보고 싶다, 감독님. (웃음)

청춘의 이미지가 좋아요. 규정지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어찌보면 위태로운 건데, 그게 너무 좋아요. 제가 오다기리 조를 좋아하는 이유도 얽매이지 않아 보여서예요. 자유롭고, 바람 같기 때문이죠. 저는 나이가 들어도 지금 제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안정되고, 다 받아들여버리고, 유아인은 어떤 아이다, 결론을 내리게 된다면 정말 싫을 것 같아요.

경험이 지금 저에겐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 경험을 제대로 된 기억으로 남겨놔야죠. 나는 연예인이라 조심해야지, 이런 데는 가면 안 돼, 이런 것은 보면 안 돼, 하는 생각은 버려야죠. 저는 노래를 한곡이라도 더 들어보고 싶고, 책을 한권이라도 더 보고 싶고, 안 가본 곳을 한곳이라도 더 가보고 싶어요. 그게 연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배워나가려고요. 이제 영화 두편 찍은 제가 이런 말 하면 웃기겠지만, 연기는 저에게 인생 그 자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