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3월3일(토) 밤 11시
우리에게 <안녕, 나의 집!>으로 잘 알려진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과 함께 옛 소련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이다. 그는 노골적인 발언이나 비판 대신 풍자와 유머를 통해 현실에 대한 근심을 시적으로 표현해왔다.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은 무심하지만 반사회적이고 그들의 일상은 무료하면서도 부조리하다. 그래서 계몽적이거나 긍정적인 메시지와 거리가 먼 그의 영화들, 특히 <낙엽>(1968), <옛날에 종달새가 살았다>(1970)와 같은 영화들은 자국 내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곤 했다. 80년대 초 프랑스로 망명한 뒤 만든 <달의 애인들>(1984)은 이오셀리아니만의 색채가 여전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익하다. 일관된 내러티브를 떠올리기에 인물들은 너무 많고 시공간은 분산되고 사건 또한 파편적이다. <달의 애인들>을 가장 즐겁게 보는 방법은 영화 속 풍경을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다. 낡은 아파트와 지저분한 거리, 작은 술집들, 오래된 공원, 그리고 그 안에 북적대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동선. 이러한 파리의 풍경은 하나의 줄기를 따라 직선적으로 펼쳐지지 않고 커다란 원 안에 갇힌 듯 순환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신과 신 사이에 유기성을 부여하는 건 사건의 인과관계나 이야기의 연속성이 아니다. 한 장면과 다음 장면을 이어주는 것은 이미지, 행위 혹은 사물의 ‘반복’이다. 이를테면, 앞 장면에서 A가 했던 행위를 다음 장면에서 B가 그대로 반복한다거나 앞 공간에 있던 작은 사물이 뒤이어 나오는 공간에 다시 등장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무수한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흡수되지 않고 겹쳐지고 또 겹쳐지며 파리의 풍경을 만들어나간다. 개별 사건이나 인물들은 그 자체로는 사사롭지만, 그들이 모이자 영화 전체적으로는 역동적이고 심지어 카오스적인 흐름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달의 애인들>에는 설명적인 대사 대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정체불명의 음향들과 인물들의 슬랩스틱적인 몸짓이 있다. 그래서 때때로 이 영화에서는 초기 무성영화의 분위기가 배어나오기도 하고 건조한 사실주의와 기괴한 판타지가 묘하게 뒤섞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일상의 불연속적인 조각들을 여기저기 흩뜨리면서도 그 안에서 계층의 간극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