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라운드: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여자는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기대게 마련이다. 그점에서 세영은 순이보다 든든한 원군을 등에 업고 있다. 비록 사고로 모든 가족을 잃었지만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세영을 지극히 아끼고 있고,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쯤 대수냐고 나무랄 시할머니는 치매를 앓는다.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세영의 남편(이재룡)과 그의 첫사랑 서경(성현아)을 갈라놓았다! 그러나 순이에겐 능력있고 성미 괄괄한 여동생 맹영이뿐이다. 바람기 많은 남편에게 평생 설움받았던 시어머니는 딱 한번 순이 편을 들어주는가 싶더니 남편 애인의 물량 공세에 넘어갔고, 시누이는 원래 순이를 싫어했다. 무주공산에 외로운 초생달 처지이니, 맹순이가 불쌍한 조강지처들의 제1라운드 승자다.
제2라운드: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반드시 이혼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일단 이혼한 다음 먹고살 방법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이번 라운드에서도 맹순이가 훨씬 불쌍하다. 맹순이가 화장품 샘플만 쓰고 콩나물 100원씩 깎아가며 억척스럽게 모은 재산이 고작 아파트 한채인데, 남편 반성문(손현주)은 애인에게 월급을 퍼다주다 못해 직장에서 잘리기까지 한다. 그에 비하면 어딘가에 양평 땅문서를 숨겨두었다고 집안을 뒤지는 시할머니, 한복집 하는 시어머니, 소아과 의사인 남편까지, 세영이 받을 수 있는 위자료 액수는 순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불쌍한 승자는 역시 순이.
제3라운드: 돌부처도 시앗을 보면 돌아앉는다
아무리 사랑받는 여인이라고 해도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있으니, 죽은 애인과 첫사랑이다. 세영의 남편 건우는 어머니 때문에 아이까지 낳은 첫사랑과 생이별을 했고, 다시 만난 첫사랑이 그만 헤어지자고 해도 그녀의 발목을 붙든다. 그러나 반성문은 이름값을 하는지 결정적인 순간에 반성하고 돌아온다. 건우가 아이 잘 보고 살림 잘하는 세영과 결혼한 반면, 반성문은 그래도 예전엔 진심으로 순이를 사랑하여 연상의 여인에게 매달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순이가 연적을 물리칠 수 있는 승률이 세영보다는 훨씬 높다고 하겠다.
3라운드로 따져보니 순이가 2승, 세영이 1승으로, 세상에 다시없이 불쌍한 조강지처는 맹순이가 되겠다. 암으로 세상을 하직한 맹순이 여사가 바람 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드셨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