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이 만든 영화 맞아?” 윤제균 감독이 4년간의 공백을 깨고 선보인 <1번가의 기적>에 대한 첫 반응은 놀라움이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낭만자객> 등으로 한국 코미디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열었고, 충무로에 순기능만큼이나 악영향도 있었던 그가 철거민들의 삶을 여유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까닭에 그 놀라움은 지당해 보인다. 강박적이라고까지 느껴졌던 윤제균 영화 특유의 개그와 유머가 많이 사라진 대신 삶에서 우러나오는 넉넉한 웃음과 세상에 대한 질량감있는 관찰이 덧붙여진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변화 또한 느끼게 한다. 스스로 “이번 작품에서는 신인감독의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고 말할 정도로 작지 않은 변화를 꾀한 윤제균 감독에게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번가의 기적>은 어떻게 떠올린 영화인가. =철거민들 이야기는 <두사부일체>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청계천 주변의 철거를 보면서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두사부일체> 촬영을 시작했는데, 극중 오승현 집을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된 난곡 지구에서 찍었다. 철거 직전의 그곳 분위기를 보면서 언젠가 이것을 영화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과거에 봤던 TV프로그램들도 영향을 줬다. 특히 <PD수첩>에서 철거 직전의 난곡 지구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PD가 동네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왜 학교를 안 가냐’고 묻자 아이가 ‘애들이 집이 없다고 놀려서요’라고 말을 하더라. 그리곤 연말에 <PD수첩 그후>라고, 과거에 취재했던 대상의 현재 모습을 담는 프로그램을 하더라. 그때 그 PD가 다시 난곡 지구로 갔는데 이미 철거가 끝난 뒤였다. 그런데 그때 그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울면서 ‘아저씨, 우리 집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그 대사는 <1번가의 기적>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낭만자객>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작품으로 이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낭만자객>을 만든 뒤 3년 동안(<1번가의 기적>은 지난해 6월부터 촬영에 돌입했다) 창작자로는 슬럼프를 겪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고, 감독으로서 자신도 없었다. 그 사이 조급한 마음에 시나리오를 5편 정도 쓰다가 엎었다. 그러다가 결론을 내린 게 상업성과 흥행을 다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정답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철거민 얘기를 꺼내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 감독 자신의 경험이 많이 반영됐다고 들었다. =영화 속 인물들에 내 개인적 경험이 많이 반영됐다. 네댓살 때 부산 남부민동 달동네에 살았는데 일동이와 이순이는 그 시절 내 모습이 많이 투영된 것 같고, 명란(하지원)도 나의 아버지가 실제로 아마추어 권투선수였으니까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임창정이 연기한 필제는 철거현장에서 일했던 친구가 반영되었고, 선주(강예원)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집안이 어려워졌지만 굳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과거의 내 모습과 닮았다.
-<1번가의 기적>은 전작들과 달리 코미디 요소가 적은 편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뭔가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스타일과 영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내가 쓰려다가 유성협 작가에게 맡긴 것도 그 때문이다. 유성협 작가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작업을 해보니까 나와 색깔이 완전히 다른 것 같더라. 드라마가 강하고 섬세하고. 그래서 함께 일하게 됐다. 스탭을 꾸릴 때도 원칙이 하나 있었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낭만자객> 때 같이 했던 스탭을 한명도 안 쓰고 모두 새로운 스탭들과 작업한다는 거였다.
-그런 변화에 대한 욕구는 <낭만자객>의 실패에서 시작된 것인가. =흥행뿐 아니라 영화적인 면에서도 <낭만자객>의 실패를 돌아보면 자만심이나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스스로 타협하는 매너리즘을 갖고 일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 같다. 자만심이나 매너리즘은 감독에겐 속된 말로 쥐약이다. 그것을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좀더 긴장한 상태에서 촬영에 임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생면부지의 스탭들과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 영화는 입봉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윤제균이라는 이름은 코미디영화와 관련된 일종의 브랜드인데 불안감, 부담감은 없었나. =만약 내 브랜드라고 한다면(웃음) 재미와 감동이라는 요소를 나름대로 계산해서 관객에게 지루하지 않은 영화로 보여준다는 것 같다. 이번이라고 그것을 완전히 버리면서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면은 있다. <낭만자객>까지는 내가 내 브랜드를 이용했던 것 같다는. 그러니까 그때까지 영화를 만들 때는 머리를 굴려 계산하면서 ‘난 윤제균이니까 재미도 있어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하고, 새로운 볼거리도 있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이번 작품은 계산을 거의 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이번 영화가 기존 영화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머리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가슴으로 영화를 찍으려 했다고.
-<1번가의 기적>은 사회의 약자 또는 루저들에 대한 영화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들을 감싸야 한다는 생각을 했나. =나는 영화 속 철거민을 관객이 동정해야 할 대상이나 감싸줘야 할 사람들로 바라보지 않았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 또한 고생을 했다면 했다. 나는 결혼할 때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다. 아현동의 7평짜리 반지하방에서 2년 넘게 살았는데, 장남에다 장손이어서 그곳에서 친척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 방 전세금이 2500만원이었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대출을 1년씩 연장할 때마다 보증인을 데리고 은행에 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가장 싫은 일이 은행에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내가 월급쟁이에서 영화감독이 된 것이 기적 아닌가. 나 같은 사람도 꿈을 이뤘는데 누구든지 열심히만 산다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닐까. 영화 속 철거민들도 이런 시각에서 바라봤을 뿐이다.
-이전의 영화들은 사학비리라든가 낙태 등 사회적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변화가 느껴진다. =그동안은 그런 구조적 문제나 사회적 사건 등을 해결하려 문제를 제기했다면,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사람으로 돌아간 것 같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어차피 기적이 일어난다면 철거 작업이 중단되거나 주민들이 새로 짓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그리고 재개발 때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임대주택 비율을 상향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짜 기적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런 법적이거나 구조적인 게 아니었다. 내 의도는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촬영지가 인상적이다. 어떻게 찾았나. =찾는 데만 한달 넘게 걸렸다. 연출부와 제작부가 전국을 다 뒤져가며 부천, 전주 등에 후보지를 찾아냈다. 마지막으로 부산에 헌팅 왔을 때는 도로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하마을’도 찾아냈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장소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간 곳이 영화 촬영지인 물만골이었다. 물만골은 물이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그곳을 딱 보고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부산 한복판에 자리잡은 곳인데도 숲도 있고 물도 있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주민들이 촬영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나. =촬영 허가를 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였다. 내 진심을 믿어달라는 것 말이다. 이 아름다운 곳을 우울하고 칙칙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동화처럼 아름답고 예쁘게 그리고 싶다고 수없이 얘기했다. 우리 영화 프로듀서는 아예 이곳에 숙소를 잡고 매일같이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설득 작업을 했다. 결국 두달 만에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
-<1번가의 기적>은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본격적인 멀티 캐릭터 영화다. =이 영화가 다루려는 것은 한두 사람의 꿈과 희망이 아니라 등장인물 각자의 그것이다. 사람마다 바라는 기적이 다 다르잖나. 사랑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부모 자식의 관계일 수도 있고,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유성협 작가와 나는 다양한 기적을 말하려고 했다. 작지만 소중한 각자의 꿈과 희망 말이다. 결국 기획 단계부터 멀티 캐릭터는 필수적이었다.
-<색즉시공>에 이어 임창정, 하지원 콤비를 다시 캐스팅했다. =애초부터 과거에 함께했던 이들 커플과 같이 작업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명란이라는 캐릭터를 떠올리면서 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힐러리 스왱크보다 사실적이고 강인한 여자 복서 캐릭터를 원했다. 그러다보니 하지원 외에는 생각나는 배우가 없었다. 필제도 캐릭터를 생각했을 때 임창정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배우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임창정은 다른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상태라 다른 배우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그 영화 촬영이 연기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정씨를 기용할 수 있었다.
-정두홍 무술감독을 명란의 아버지로 기용한 이유는 뭔가. =명란 아버지 역할은 정두홍 선배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권투장면을 연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는 실제 링에도 서본 권투선수 아닌가. 그리고 난 그의 눈빛을 보면 슬픔이 느껴진다. 백 마디 말보다 눈빛 하나로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시킬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런 확신을 갖고 출연 제의를 했더니 정두홍 선배는 ‘명란 아버지 부분을 읽으면서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면서 ‘나도 그렇게 될까봐 하기 싫다’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5번도 넘게 찾아가서 어렵사리 설득할 수 있었다.
-윤제균표 영화라고 하면 ‘중반부까지 웃기고 후반부에 울린다’는 공식이 존재한다. 이번에도 그 공식은 어느 정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난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좋아한다. <두사부일체>를 만들 때 ‘코미디영화지만 충분히 울릴 수 있다’면서 시나리오를 쓴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런데 제작사에서는 코미디영화가 어떻게 울리냐, 세상 천지에 그런 영화가 어딨냐고 했다. 거기에 나는 ‘그런 영화가 없으니까 만드려는 것 아니냐’고 맞섰고 결국 영화를 만들었다. 그 뒤 <색즉시공>도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일단 코미디영화도 충분히 울리고 웃기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색즉시공>이 끝난 뒤 상영 중인 한국 코미디영화들을 봤는데 모두 재미와 감동을 담고 있는 모양새가 비슷해 보이더라.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낭만자객>을 만들면서 나 자신도 ‘아, 이게 트렌드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덫에 빠진 셈이다. 물론 그런 구성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이젠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관객도 식상해하니까.
-전작에서도 꾸준히 등장하는 구타장면이 이번 영화에도 너무 많은 것 같다. =그건 진짜 취향인 것 같다. 구타 외에도 화장실이나 토하는 장면 이런 것도. (웃음) 아마도 리얼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절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긴 한데, 아직은 그렇게 리얼하지 않으면 관객이 감정이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면이 있다. 그게 취향이라면 변화할 수도 있으니까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주현이 명란 아버지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장면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기자시사회 끝난 뒤 간담회 때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건 내 아버지 이야기다. 아버님이 폐암 환자였는데, 내가 대학 2학년 때 병수발을 하면서 똑같은 상황을 맞았다. 아버님의 친한 형님이 전화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부터 아무것도 먹지 마라. 가족들이 이만큼 고생하면 됐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아버님은 그렇게 돌아가셨다. 투자사와 가장 많이 싸웠던 게 이 부분이다. 상업적인 것을 생각하면 들어내라고 했지만, 나는 그 장면 때문에 관객이 50만 정도 덜 들어온다고 해도 넣고 싶었다.
-그 사이 두사부필름 대표로서 <간큰가족>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도 제작했다. 제작자와 감독 중 어떤 게 더 힘든가. =감독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제작자가 짊어져야 하는 몫보다는 최소한 5배, 아니 10배 정도는 더 무거운 것 같다. 제작자는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있다. 이건 감독의 문제다, 저건 배우의 문제다, 이러면서. 하지만 감독은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쌈마이 코미디’ 감독이라는 부류에 함께 묶이는 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나. =나는 그저 코미디에 자신있고 잘하는 것일 뿐인데 코미디 감독으로 그냥 분류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백 마디 하는 것보다 감독은 결국 영화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나를 그렇게 봤던 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윤제균이라는 사람을 조금씩 나아가는 감독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