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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로 돌아온 이성강 감독
김도훈 2007-02-01

<마리이야기>의 이성강 감독이 신작 <천년여우 여우비>로 돌아왔다. 장편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는 5년 만의 귀환이다. 그러나 이성강을 한 사람의 영화작가로 평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지난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이성강의 실사장편영화 <살결> 이후 2년 만의 귀환으로 보아야 한다. 천국과 지옥처럼 전혀 다른 세계를 담고 있는 <천년여우 여우비>와 <살결>은 이성강의 마음속에서 동시에 탄생한, 서로의 속내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양면을 지닌 우리 시대의 작가 이성강을 만났다.

<마리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화법으로 돌아오다

이성강 감독의 신작 <천년여우 여우비>는 불협화음이 내는 묘한 화음이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구미호 여우비는 뚱딴지처럼 고향을 떠난 외계인들과 함께 살고, 영화의 맥락에는 하등 관계가 없을 듯한 변기의 영혼이 등장해 여우비에게 엄마 같은 조언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상할 정도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일관성이 부재하고 프레임과 이야기의 범위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뒷방 할머니가 우리를 불러앉혀 꺼내놓는 가상의 설화 같기도 하다. 하늘을 비상하는 소년과 소녀의 이미지를 공유할지라도, 꽉 짜여진 세계 속에서 조용히 부유하던 <마리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화법의 영화인 것이다. 이성강 감독은 “<마리이야기>가 너무 조용하다고들 해서. 반발심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의 옛날 전설을 듣다보면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좀 이상하지 않나. 연관성이 전혀 없는 가지들이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어온다. 어른들에게는 뚱딴지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만의 세계로 이해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그림체에서도 <마리이야기>의 테두리없는 몽환적인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성강의 오랜 단편들의 세계를 맛본 사람들에게 이 같은 변화는 그리 낯설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이성강은 (애니메이션 용어로 ‘변환’을 의미하는)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의 작가라고 불리워도 좋을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구상으로부터 5년이 지나 생명을 얻은 영화다. 이성강 감독이 <천년여우 여우비>의 이야기를 구상했던 것은 지난 2002년 <마리이야기>를 끝낸 직후였다. “처음에는 구미호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천년여우 여우비>에 나오는 외계인 요요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협애니메이션이었다. 요요들이 칼차고 다니면서 칼싸움도 하고. 웃기긴 하지만 말이다.” 하나 요요들은 주인공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마리이야기>와는 달리 흥겨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 욕심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온전히 끌고 나갈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생생한 캐릭터를 안겨준 것은 브라운관이었다. “TV에서 구미호 전설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거면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와 멜로와 판타지 등 여러 장르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고, 또 구미호라는 대상의 상징성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마리이야기>를 만들고 나서 평면적인 내러티브가 지루하다는 점을 종종 지적당했던 이성강은 <천년여우 여우비>를 위해 몇명의 충무로 시나리오작가들과 작업하기로 결심했다(공동작업에 큰 취미가 없는 그로서는 결단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비트>와 <태양은 없다>의 심산 작가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시나리오 작업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어떤 작가들은 여우비를 아동만화의 주인공에 가까운 소녀로 그려냈고, 심산 작가의 여우비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여인이었다. 이성강 감독이 원하는 여우비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사춘기 소녀였다. 결국 이성강 감독은 자신이 직접 펜을 들었고, <마리이야기>와 마찬가지로 10살에서 13살 사이의 소년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냈다. “그 나이가 되기 전까지,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자란다. 10살에서 13살이 되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성강 감독은 캐릭터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좋은 위치에 있는 사춘기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한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숨어 있다. 사춘기 시절을 평온하게 통과하지 못했던 감독 자신의 과거를 캐릭터들을 통해 위안받으려는 마음이다.

감독의 일그러진 사춘기를 입은 캐릭터들

이성강 감독은 “굉장히 암울한” 사춘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은 아이다운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나 중·고등학교 시절은 고통스러웠다. “옛날 분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한번도 좋은 선생을 만난 적이 없다. 사춘기 소년에게 중요한 롤모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비난받을 만한 일들을 저질렀다. 시기도 좋지 않았다. 베트남전에 다녀온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무용담을 자랑스레 떠벌리는 시기였고, 갓 과외의 시대가 시작되기도 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분위기였다. 군대와 버금갈 정도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캐릭터에 영향력을 주는 성인 롤모델 캐릭터가 이성강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개인적인 상처에 기반한 것이라 믿어도 좋을 것이다. <마리이야기>의 마지막이 스산한 추억처럼 문을 닫았듯이, <천년여우 여우비>의 마지막 장면도 긍정적인 에너지만으로 관객을 떠내보내지는 않는다. 이성강 감독은 인간으로 환생한 여우비가 전생의 기억을 채 떠올리지 못한 채 전혀 다른 세상으로 걸어나가게 만들고, 그 순간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는 사춘기 이후의 삶에 대해 명확한 희망을 던져주지 않는다. “내가 컸던 세대는 사실 윗세대들이 거의 암흑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불신이 많다. 내 선배나 윗세대 분들을 존경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강 감독은 1962년 “전형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언제나 장래희망란에 ‘화가’라는 직업을 써넣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아들 두명이 모두 환쟁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부모님은 그에게 미대의 꿈을 버리라 요구했다. “고3 때는 용산에 살았다. 어쨌거나 미대에 가고 싶은 마음에 집에 석고상을 놔두고 그림을 그렸는데, 12·12 사태 때 유탄이 지붕을 뚫고 들어와 석고상의 정수리를 뚫고 지나갔다. 완전히 박살이 나 있더라.”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상징적인 이 사건 이후, 서정시를 쓰기는커녕 서정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 만큼 우울한 1981년이 찾아왔고 그는 연세대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이성강 감독은 이때의 선택에 지금도 약간의 미련이 남아 있다. “그냥 올곧게 가버렸어도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 애니메이션 일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하나 미련과 열정을 동시에 가진 사람에게 시간은 결국 스스로를 복구한다. 이성강 감독은 대학을 졸업하고 또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당시의 그림이란 운동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했다. “그때의 미술이란 민주화 운동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기였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 그전에는 원체 개인적인 인간이었으니까.” 민중미술협의회에서 동인활동을 하며 8년 정도 화가로 활동한 그는 민주화 운동이 사그라들면서 또다시 “개인적인 작업”으로 돌아왔다. “멋있게 이야기하면 아틀리에 화가고. 사실은 천하에 없는 백수였다.”

화가를 꿈꾸던 소년에서 애니메이션 작가로

개인적인 미술 작업에 열중하던 이성강 감독이 움직이는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은 지난 1995년이다. 다만 애니메이션이라는 한정된 매체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뜻이 맞는 몇몇 예술가들과 모여 사이버 아트라는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컴퓨터를 이용해 현실 속에서 음악을 끌어내는 작업들이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중에는 조각가도 있었고 컴퓨터그래픽이나 컴퓨터 음악가도 있었다. “신문에도 많이 났고, 그것 덕분에 꽤나 유명해진 친구들도 있다. 가수처럼 앨범도 두개나 만들었다. 그런데 만들다보니까 나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작업은 역시 애니메이션 파트였다.” 인디록 그룹 ‘레이니 선’의 뮤직비디오 <Ocean> 같은 초창기 이성강 감독의 단편들은 내러티브보다는 몽환적인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종의 이미지 실험에 가깝다. 상영회 역시 퍼포먼스와 이미지가 결합된 일종의 미술 전시회에 다름 아니었다. 특히 이 시기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덤불 속의 재>는 UFO를 목격한 남자가 분열을 겪는 과정을 스산한 이미지로 담아내며 사회적 칼날을 드리운다. 이 작품으로 이성강 감독은 1999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단편부문에 한국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초청되었고,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가장 주목받는 이름이 됐다. 그러나 단편을 만들어 상영회를 하면 할수록 욕구불만 상태는 지속됐다. 자신의 단편이 다른 스무편의 단편과 묶여 상영되는 터라 관객은 제목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웅성웅성 상영관에서 나오는 관객을 보면서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몇 개월에 걸쳐 열심히 만든 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동기가 조금 불순하긴 하지만 한 타임에 내 작품만 보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마리이야기>를 만들게 된 동기였다.

<마리이야기>는 비평적인 환대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부흥에 대한 짐을 억지로 지워준 언론과 대중, 애니메이션을 산업으로 지원하겠다며 ‘자동차 수출 수익=<라이온 킹> 수익’이라는 무식한 통계를 부르짖던 정부의 단편적인 캠패인이 이어진 뒤여서 상처는 더욱 깊었다. 이성강 감독은 애니메이션계와 대중이 자신에게 던지는 지나친 기대가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고 토로한다. 사실 <마리이야기>를 준비하던 이성강 감독은 마음속으로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응당 지니고 있을 관객과의 소통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그 역시 온전히 거부할 수는 없었다. “관객을 많이 만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내 영화가 사회 속에서 한편의 영화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봐주는 건 참 중요하다.” <마리이야기>가 대중적인 소통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품고, 이성강 감독은 새로운 장편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를 조용히 구상하는 동시에 옛 애인과 또다시 관계를 맺는 남자가 자기 집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어느 소녀의 영혼을 보게 된다는 내용의 실사영화를 준비했다. 이성강 감독의 이름을 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마리이야기>를 떠올릴 수 없었을 장편영화 <살결>이었다.

단편과 장편 사이 혹은 애니메이션과 실사 사이

HD카메라로 찍은 <살결>은 과격한 영화다. 포르노라는 오해까지 사야 했던 강렬한 정사장면들의 연속 때문만은 아니다. 헤어진 옛 연인과 육체적인 유희에 탐닉하면 할수록, 주인공 남자는 허상과 씨름하며 마음의 늪으로 빠져들고, 주변 사람들은 제각기 환청을 듣거나 보이지 않는 것에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이성강 감독은 절망과 후회와 삶에 대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살결>이 “나의 본모습에 더 가까운 영화”라고 설명한다. <마리이야기>와 <천년여우 여우비>가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이성강의 영화라면, <살결>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이성강의 영화다. <살결>을 2005년 밴쿠버영화제에 초청한 토니 레인즈는 이성강 감독을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일컬었다. 토니 레인즈의 표현처럼, 결국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모두 이성강이다. 두 세계는 하나다. “두 세계는 반대가 아니다. <살결>은 오히려 <마리이야기> 속에 슬며시 숨어 있던 뒷이야기를 모조리 드러낸 것이다. <마리이야기>도 사실은 허상을 만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아닌가. 다만 <살결>과 다른 점이라면, <마리이야기>는 주인공이 허상을 만나고 있지만 최소한 그 허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느낄 줄 안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창조물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되새기고 개인적인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마리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와 <살결>이 제각기 이성강 감독에게 안겨주는 위안은 다르다. “<마리이야기>와 <천년여우 여우비>는 나에게 확실한 위안을 준다. 사실 <살결>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너무 냉혹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자신에게도 너무 가혹한 영화다. <살결>을 다시 볼 때마다 너무 우울해지고, 너무 슬프다.” 자기 파괴적인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자기 파괴적인 욕망을 씻어버리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이성강 감독의 답변은 조금 낯설거나 무시무시한 데가 있다. 사실 이성강 감독 역시 <살결>을 통해 암울했던 80년대와 유년기에 대한 ‘씻김굿’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살결>은 엉엉 울어버린 뒤 탈탈 풀어버릴 수 있는 영화가 끝내 되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지킬 박사로서의 이성강은 여우비와 마리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천년여우 여우비>의 마지막 장면 또한 매몰차고 스산하다. 해피엔딩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설명이 적고, 캐릭터들이 행복하게 살았노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고보면 <마리이야기>로 얻은 ‘서정적 애니메이션 작가’라는 호칭은 이성강에게 그리 훌륭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이성강 감독의 오랜 단편들과 <살결>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마리이야기>가 특이할 만큼 서정적인 영화였다. “맞다. <마리이야기>는 내 스스로 밝아지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80년대의 나는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모든 일을 안으로만 삭이는 일이 많았다. 도무지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나의 단편들 중에서도 희망적인 작품은 거의 없다. 오히려 <마리이야기>를 만들던 시기에 비로소 마음을 좀 바꾸어 살고자 다짐했던 것 같다. 일부러 즐거워지려고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이성강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는 작가다. 그에게 붙어 있는 서정적 애니메이션의 몽상가라는 손쉬운 이름은 떼어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성강은 꿈을 꾸지만, 그 꿈은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실재와 환상이 혼재된 백일몽의 아름다움과 닮아 있다.

‘변환’을 꿈꾸며 이성강은 오늘도 전진한다

이성강 감독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끌어내는 정서적 실험 못지않게 형식적 실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다. 이미 단편 시절을 통해 여러 가지 혼재된 양식의 형식을 실험해왔고, <마리이야기>와 <천년여우 여우비>의 스타일 역시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알아채지 못할 만큼 다르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한국적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한국적 스타일이라는 것이 오히려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적 스타일을 굳이 찾으려는 시도도 우습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게 있듯이 한국 애니메이션도 그래야 하는 걸까. 일본적인 스타일과 미국적인 스타일, 그리고 유럽적인 스타일이 모두 공존하는 동시에, 한국의 민화를 차용한 스타일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여러 가지 영향을 모두 받아 다양성을 갖는 방식이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이미지의 변형을 통해 장면을 전환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인 메타모포시스에 대한 고민이 부쩍 늘었다. “이걸 한국말로 뭐라 하는 게 좋을까. 은근슬쩍 넘어가기? 혹은 뻔뻔스럽게 넘어가기? 인도 출신 애니메이션 작가 이슈 파텔의 작품을 보면 메타모포시스가 진행되는 상태에서 그림이 만들어내는 직관적인 감성들이 폭발적으로 변화해나간다. 사람들이 ‘저렇게 하면 유치해져’라는 생각으로 구석에 치워뒀던 방식. 그런 형식의 차용과 더불어 옛날이야기를 전달하는 아주 옛날이야기 같은 서사방식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올해 초 <살결>을 개봉시킬 소망을 갖고 있으며, 그제야 사람들은 이성강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력 아래 자리잡은 서정적 애니메이션의 우아한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림체와 형식의 고민을 넘어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간극을 넘어서, 우리가 몰랐던 미지의 작가 이성강의 고민은 계속된다.

다음은...

실사와 애니메이션 동시에 구상중

현재 이성강은 실사와 애니메이션 두 작품을 동시에 구상 중이다. 애니메이션 <도깨비로 태어난 아이>(가제)는 부모를 잃은 아이의 이야기다. 부모가 숲속의 짐승을 죽이자 그 원한으로 나라 전체가 황폐화된다. 도깨비처럼 뿔이 나 있는(그래서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이는 다시 부모를 찾아가 부모에게 지워진 원한에 맞서서 싸워야만 한다. 이성강 감독은 <천년여우 여우비>를 통해 시작된 한국 설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바리데기>와 <자청비>처럼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특히 설화에 등장하는 버려진 여자아이들은 농사의 신이나 전쟁의 신 등, 나중에 신의 경지에까지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타국의 설화와 비교하자면 매우 독창적인 이야기다.” <도깨비로 태어난 아이>는 감독의 이전 작품들처럼 부모라는 어른의 존재가 부재하다. 하지만 부모가 만들어낸 원한을 아이가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마리이야기>와 <천년여우 여우비>보다 좀더 확장된 세계처럼 들린다. 실사영화 <누구를 기다릴까?>(가제)는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아이와 애엄마를 찾아나선 아버지의 이야기다. 삼류 클럽에서 천박한 마술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마술사 아버지는 이제 자식을 위해 애엄마를 찾아 나서야만 한다. 문제는 애엄마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다. “<살결>도 그랬지만 성인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보다는 성인이 등장하는 실사영화가 훨씬 쓰기 쉽다. 애니메이션은 모든 요소와 캐릭터와 상황을 상상으로 만들어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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