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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마검의 주인

영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보랏…>은 풍자의 칼을 날카롭게 휘두르는데, 그 칼날이 양날일 뿐만 아니라 도대체 누가 이 칼의 주인인지 알기가 여간 쉽지 않으니, 전형적인 후기 근대적 현상이 아닌가 싶다. 영국 유대인 풍자배우 사샤 바론 코언은 허구의 카자흐스탄 방송기자 보랏 사디예프 역을 맡았다. 코언은 ‘알리 G’라는 가짜 영국 래퍼, ‘브루노’라는 가짜 오스트리아 동성애 취향의 TV기자 등 이미 다양한 ‘타자 캐릭터’로 TV 풍자프로와 영화로 유명해진 지 오래다. 그의 방법은 언제나 똑같으며 매우 간단하지만 효과적이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무식한 척, 영어가 미숙한 척하면서 정치가, 활동가, 사회인 등 일반인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암시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코언의 수법은 보랏을 통해 유대인, 흑인, 여성, 장애인, 동물 등을 가리지 않고 인종차별주의적인 편견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우스갯소리를 하기보다 사람들 스스로가 웃음거리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다. 풍자의 막말이 메스껍다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거리낌없이 마구 웃으며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학적으로 전자는 ‘다형공포증’(proteophobia), 후자는 ‘다형애호증’(proteophilia)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다형공포증은 (가짜 카자흐스탄인) 보랏이 아닌 (실제인물 영국인) 코언이라는 사회비판적인 풍자배우의 진실(숨은 의제)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농담의 오해와 오용을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다형애호증은 타자로 인한 모호함을 배제를 통해 없애기보다는 그것을 맹목적으로 즐기고 소비함으로써 분해하는 것이다.

<보랏…>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후기 근대적 해체주의에 가깝다. 물론 위험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랏은 가해자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칫 가해자의 논리로 악용되는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랏…>의 개봉을 앞두고 미국의 친유대민권단체인 반차별주의연맹(ADL)은 <보랏…>의 유머를 이해하기에는 사회적 지식이 부족한 관객도 있을 수 있으며, 자기의 편협한 편견을 더 강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 맥락에서 지적한 것이리라. 하지만 ADL은 또 영화제작진이나 유대인으로서의 코언이나 누구를 화나게 하려고 한 것도, 악의적인 의도도 전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엔 “이 영화를 보기로 한 모든 이들은 코언의 풍자기술을 반유대주의 또는 무시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모든 다른 공포증들을 폭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으면 한다”는 ADL 입장이 문제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보랏…>은 누구나 일종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때문에 카메라 앞에 굴욕적인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이들뿐만 아니라 극장의 익명성 속에서 마음껏 깔깔대며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자성하라는 뜻을 품고 있다. 왜냐하면 <보랏…>은 우리에게 거울을 대주는 것으로, 영화에서 나온 사람과 그들의 입장은 단지 영화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실제이기 때문이다. 코언이나 제작진의 의도 여부를 떠나서 <보랏…>은 보통 무시하거나 그냥 간과하는 정상이나 주류가 아닌 인간의 흉한 공백을 보여준다. 지도에 흰점으로 그려져 있는 이러한 곳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일정한 생각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보랏…>은 그들의 위선적 목소리를 마치 확성기를 통해 들을 수 있도록 ‘트로이의 목마’인 보랏을 활용해서 적의 무기를 남용해 인간의 위선적 악의를 폭로해본다. 결국에는 흔들림없이 마치 초인적인 힘으로 마검 엑스칼리버를 바위에서 뽑아내는 것과 같이, 비판의 무기인 풍자의 칼을 다형애호증과 다형공포증 사이에서 빼내는 것은 관객의 책임이며 의무인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보랏…>의 행간 텍스트를 해석하는 일은 이 영화의 어려움이면서도 동시에 깨달음의 기회를 갖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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