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늘 내게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말 안 듣는 아이였던 나는 자신 있게 “예!”라고 짧게 대답한 뒤 오만하게 까먹어버렸다. 그 말씀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내게 세상이 부모님 대신 벌을 내렸다. 원하는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이태백’으로 지내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된 것이다. 날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욕하고 저주하던 난 뜻도 모르는 책들을 읽어가며 바닥난 자존심을 긁어모았다. ‘세상’이란 단어 앞에는 드디어 ‘만만치 않은’ 혹은 ‘빌어먹을’, 그것도 아니면 ‘망할’이란 수식어가 하나씩 붙기 시작했고, 어느덧 나는 남들 눈에는 멀쩡하기만 한 그 ‘세상’과 함께 같이 망해갔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내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루저일 뿐이었다.
20대를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은 대학교 4학년 때 일어났다. 기성 작가와 만날 기회가 있어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는 유난히 독설이 심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3시간 동안 앞에 있는 소주병을 깨서 그 인간 머리를 박살낼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그의 말은 가시로 가득했다. 그 말의 요지는 이러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다독, 다작, 다사. 당신은 많이 읽지도 않았고, 많이 쓰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많은 생각도 할 수 없었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작가가 되려 하는가?’ 나의 정수리에 일침을 놓는 그의 말에 난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게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서 펑펑 울었다. 부끄러움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내게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고, 세상의 쓴맛을 한번 즐겨볼 테냐 하는 태도로 날 쳐다보았다. 난 그 눈빛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내가 그토록 원망하며 찾아 헤매던 세상의 악마였다.
어떻게든 그 악마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콤플렉스를 침처럼 삼키고 눈빛에 독기를 가득 품은 채 책을 읽고 글을 썼던 내게 세상은 차갑게 응수했다. 내가 문학에 대해 신앙심 대신 앙심을 품을수록 악마는 ‘헤헤헤’ 웃으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난 자연스럽게 오만함을 온몸에 향수처럼 뿌려대기 시작했고 독기를 문신처럼 몸에 지녔다. 내 주위엔 오만한 녀석들 말곤 없었고, 나 자신도 오만함으로 치자면 세계 챔피언감이었다. 그리고 그 오만함마저 사랑스러운 20대의 자신감이라고 감싸안아버렸다(감쌀 게 따로 있지!). 세상의 필요가 아니라 본인만의 필요에 의한 방어기제는 대체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를 갖고 온다. 대표적으로 자기 연민이 그러하다. 난 수도 없이 내 목을 졸랐지만, 결국엔 부끄러움에 복받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숱한 밤을 불면으로 지새웠다.
이 글을 보는 어떤 20대는 굉장히 발랄하고 자신감이 넘칠 것이다. 그 자신감을 사랑한다. 하지만 어떤 20대는 굉장히 침울해 있고 열등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 열등감 역시 사랑스럽다. 사실 자신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아직 무언가를 이뤄가는 시기인 20대의 호주머니에 그 동전이 가득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동전들을 가득 지닌 당신에게 어떤 좌절 앞에서도 초라해지지 말라는 조언을 할 만큼 난 떳떳하지 못하다. 대신 좌절을 통해 호기를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자살에 관한 뉴스가 유난히 크게 들려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크게 절망하고 자신의 호기를 접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속이고 쉽게 오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오만함의 늪에 한번 빠지면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난 오랫동안 타인으로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비로소 얼마 전에부터야 난 굉장히 낯선 인생을 살기 시작했지만, 그 낯섦마저 배움이 되고 있다. 바보의 말이 언젠가 당신에게 가닿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은 조금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