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영화계에서 씨름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해준, 이해영 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는 성전환 수술을 위해 씨름에 입문한 오동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전직 씨름 선수였던 배우 이언을 씨름부 선배로 선보였다. <최강로맨스>를 통해 처음으로 영화 일에 뛰어든 제작부 스탭 이종석 역시 씨름 선수 출신. 영화에 닿기 전까지 방송사 촬영 스탭, 연극 무대연출 등 다채로운 일에 손댄 점도 흥미롭다. “조금 무섭게 생겼으니 (사진을) ‘뽀샵’ 처리해달라”며 너스레를 떨던 그와의 대화를 여기에 옮겼다.
씨름은 어떻게 시작했나. 어렸을 때 덩치가 커서 뽑히다시피해서 하게 됐다. 대학 재학 중 무릎을 심하게 다친 이후 더이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전부터 방송이나 영화에 관심이 있어 복수 전공으로 연극영화과 수업을 계속 들었었다. 나중에는 체육과에서 이쪽으로 전공을 아예 바꿔버렸다.
제작부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영화 일을 하고 싶어하던 찰나에 아는 사람이 소개해줬다. 그전엔 방송이랑 연극 무대연출 일을 했다. 촬영 스탭 보조로 일하면서는 잔심부름을 주로 했는데 지금은 프리 프로덕션에서 포스트 프로덕션, 홍보 일까지 다 할 수 있어 재미있다. 무대연출을 할 때는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과 서울무용단, 서울연극단에서 선보이는 창작극 무대 등을 맡아했다.
촬영 중에 생긴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나. 내가 기상담당이라 촬영 전날 날씨를 확인해 다음날 촬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이번 작품은 다들 이상하게 촬영 스케줄과 날씨가 잘 들어맞았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인천에서 폐차장 신을 촬영할 때 그 공식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폭설이 쏟아진 날이었는데 기상청에 전화를 하니 10분 단위로 날씨 정보가 계속 바뀌는 거다. 결국 그날 촬영을 접었고 다음날 전 스탭이 눈 쌓인 폐차장 바닥을 천으로 닦고 다시 말려야 했다.
실수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영화판에서 쓰는 용어를 잘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물건을 가져다준 적도 많다. 한번은 소품차량에 기름을 채워야 하는데 발전차량에 넣어서 소품차량이 촬영 중에 멈추기도 했다. 황급히 석유통을 가지고 가 기름을 받아왔다. 비신을 촬영하고 있어 배우들이 괴로워했고 혼도 많이 났다.
영화 일은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규칙적으로만 살아오다 하루하루가 완전히 다르니까 좋더라. 답답하고 묶여 있는 걸 싫어해 성격에도 잘 맞는다.
씨름 경력이 영화 일 하는 데 도움이 되나. 모두 똑같이 밤을 새워도 체력 하나는 좋으니까. (웃음) 둘이 들어야 할 걸 혼자서 옮기니까 편한 점이 많다. <천하장사 마돈나>에 나왔던 씨름 기술은 어떻게 하는지 한번씩 물어보더라. 미술팀에 유도부 출신 스탭도 있었는데 지금도 서로 연락한다. (웃음)
나중엔 어떤 일을 하고 싶나. PD가 돼서 괜찮은 멜로영화를 기획하고 싶다. 지금까지 내 마음에 꼭 드는 멜로영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