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기라는 장난감이 사람들 손에 쥐어진 이래 가장 돋보였던 회사는 일본 닌텐도다. 아타리를 끝으로 미국 비디오 게임 제작사가 모두 몰락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등장해 '패미컴', 슈퍼 패미컴'으로 연이은 히트를 기록하고, 한때는 비디오 게임기의 표준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많은 게임 제작사들이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닌텐도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케이드시장의 강자 세가나 일본 컴퓨터의 대표주자인 NEC의 도전도 닌텐도 앞에서 가소로운 일이었다.하지만 독단적인 소프트 메이커 관리시스템이나 서드 파티에 대한 과도한 착취, 여기에 덧붙여 CD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거부는 거대제국 닌텐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그 자리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차지했고 이제 '플레이스테이션2'로 이어나가려 하고 있다.2001년 게임기시장을 둘러싼 피튀기는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 박스'로 게임기시장에 뛰어들었다는건 이미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게임전시회인 E3에서 제대로 시연이 안 돼 망신을 당하고 2002년 봄으로 발매가 연기되면서 엑스 박스의 도전은 한풀 꺾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기서 그간 '닌텐도64'의 부진으로 비디오 게임 기계의 왕자자리를 빼앗겼던 닌텐도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닌텐도의 새로운 게임기 이름은 '게임 큐브'다 플레이스테이션2보다 2년 늦게 발매되었으니 당연히 스펙은 훨씬 높다. 하지만 닌텐도가 내세우는 것은 '게임이 아닌 게임'이라는 모토다. 언제부터인지 게임 제작사들은 게임이 아니라 눈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는 폴리곤 수를 가지고 경쟁을 해온 게 사실이다. 닌텐도는 하드웨어적인 경쟁을 끝내고 게임 자체의 즐거움, 즉 게임성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입장를 밝혔다. 그래서인지 각종 전시회에서 내세운 게임들은 <동키콩>이나 <마리오>처럼 게임의 원형적인 즐거움에 가까운 것들이었다.9월14일 드디어 게임 큐브가 출시되었다. 동시발매 타이틀은 닌텐도의 <루이지의 맨션>과 <웨이브 레이서>, 세가의 <슈퍼 몽키볼> 등 3편이다. 모두 권위있는 게임잡지 <패미통>에서 출시 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디오 게임기 사상 최고의 메가 타이틀인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를 게임 큐브로만 만들겠다는 캡콤의 충격적인 발표도 출시 분취기를 띄었다.그런데 정작 뚜껑이 열린 지금, 상황이 조금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3일 동안의 판매량이 출하량 45만대의 60% 정도라는 닌텐도의 발표가 있었고, 실은 20만대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2가 발매 이틀 만에 90만대가 팔렸다는 걸 감안하면 걱정스러울 정도로 저조한 수치다. 그 여파로 일본 투자분석가들이 닌텐도의 가치를 하향조정하기까지 했다. 유저들 사이에서도 게임이 그저 그렇다는 불평에서부터 프레임 수가 30밖에 안 돼 레이싱 게임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다는 다소 전문적인 불만까지 쏟아져나오고 있다.닌텐도의 새로운 도전은 시작부터 험난한 파도에 부딪히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던 <젤다>와 <포켓몬>을 가지고, <파이널 판타지10>이라는 킬러 타이틀로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2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상황은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게임이 많이 쏟아져나오길 바랄 뿐이다.박상우/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