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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멜빌의 세계관을 완성한 전쟁의 기억
ibuti 2007-01-19

조너선 로젠봄을 포함한 유명 평론가들의 ‘2006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작품은 놀랍게도 1969년 영화 <그림자군단>의 복원판이다. <사무라이>를 넘어서는 장 피에르 멜빌의 최고 작품의 위치에 <그림자군단>이 오른 건 필연적인 결과다. 멜빌의 영화와 삶을 규정짓는 ‘고독’, ‘멜랑콜리한 분위기’, ‘숙명적 배신과 인간에 대한 불신’, ‘염세적 세계관’ 같은 특징들은 바로 전쟁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데, 이름조차 레지스탕스 시기에 바꾼 것을 평생 유지한 그가 전쟁의 기억을 쏟아넣은 영화가 <그림자군단>이기 때문이다(그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말했다”고 했다). 레지스탕스 시절 멜빌이 감명받았던 두권의 책은 이후 그의 영화인생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둘 중 <바다의 침묵>으로 데뷔한 멜빌은 25년의 준비를 거쳐 경력의 정점에서 <그림자군단>을 영화화하기에 이른다. 서두를 장식한 글귀- ‘나쁜 기억들이여, 환영하나니, 너는 나의 먼 청춘이다’- 는 허투루 사용된 게 아니었다. 죽음을 운명으로 지고 사는 멜빌의 사람 중에서도 <그림자군단>의 7명 레지스탕스 대원만한 인물은 없다. 죽음의 이유가 모호한 멜빌의 다른 주인공과 달리 전쟁의 절망·허망함·고통이란 명백한 사유 앞에서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걷는 그들은 희미한 그림자 유령처럼 보인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마틸드의 처형장면에서, 카메라는 한 여자와 그녀를 향한 네 사람의 얼굴을 차례차례 비춘다. 그리고 죽음의 얼굴을 눈으로 목격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이 서술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멜빌의 푸른빛이 회화의 경지에 다다라 ‘푸른 지옥’으로 화한 <그림자군단>은 정녕 잊지 못할 슬픔의 기록이다. 공교롭게도 드골이 정권에서 물러날 즈음 개봉된 <그림자군단>은 구시대의 역사·신념·전설에 대한 의혹의 눈총을 맞아야만 했으나, 멜빌이 청춘과 더불어 희생·영웅·우정·의리를 향수하는 데 머물지 않았음을 따로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이 세상에 더이상 신성한 것은 없다”이니까 말이다. 복원판을 수록한 DVD는 우수한 영상과 소리에 더해 부록도 수준급이다. 프랑스영화 전문가인 지네트 뱅상도의 완벽 음성해설, 옛 기록영상 ‘장 피에르 멜빌, 필름메이커’(4분, “예술은 예술가가 세상과 동떨어져 홀로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고독의 정수가 느껴진다), 영화와 비교해볼 만한 텍스트인 ‘레지스탕스의 기록’(33분)을 수록했으며, 음성해설을 포함한 모든 부록에 영어자막이 지원되는 점도 좋다. 또한 보통 흘리기 일쑤인 ‘예고편’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멜빌이 직접 진행한 예고편은 블래즈 파스칼의 인용- “나는 기꺼이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믿는다”- 으로 시작하는데, 죽음의 발레를 춰본 사람의 목소리가 사무치게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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