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도시괴담 중 ‘빨간 마스크’가 있다. 긴 머리에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가 밤에 사람을 만나면 “나 예뻐?”라고 묻는데, 예쁘다고 하면 마스크를 벗고 귀까지 찢어진 입을 보여주며 대답한 사람의 입을 찢어버리고, 안 예쁘다고 해도 죽여버린다는 이야기다.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리던 음습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이 이야기의 원류는 일본으로, 일본에도 대동소이한 내용의 도시괴담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의 빨간 마스크를 쓴 여인이 바로 요괴다. 뿐만 아니라 귀여운 캐릭터들이 총출연하는 정도로 생각되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기이한 존재들 역시 요괴의 일종이다. <소년 탐정 김전일>에서 엄동설한에 죽은 뒤 사람들 앞에 등장하는 설녀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일본의 요괴담을 차용한 것이며, <민속탐정 야쿠모>에서도 요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우부메의 여름>을 시작으로 출간되고 있는 ‘교고쿠도 시리즈’와 원작 책을 바탕으로 영화와 만화로도 제작된 <음양사>에는 음양사가 직접 등장한다. ‘일본요괴 이야기’라고 구획짓지 않아도 관련된 이야기가 꽤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요괴란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요괴는 중국에서 처음 생긴 말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요괴라는 말이 흔히 쓰이지만 메이지 시대(1868) 이전에는 널리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요괴담의 특성상 민간전승으로 이야기가 전해오는 경우가 많고, 이때 요괴나 귀신, 정령의 존재가 섞여서 이야기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사람에게 원혼은 가지고 있는 귀신과 달리 요괴는 어떤 장소를 중심으로 출몰하는 경우가 많고, 요괴는 무생물, 곤충, 동물 등이 변신한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정령이나 귀신과 분명히 구분짓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요괴는 단순히 인간에 해를 입히는 두려운 존재만을 일컫지는 않는다. 귀여운 요괴, 인간을 도와주는 친절한 요괴와 인간을 해하는 무서운 요괴가 존재하며, 요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음양사다. 음양사는 요괴들과 소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요괴를 수족처럼 부리기도 한다. 요괴와 비슷한 존재를 한국 민담에서 찾으라면 귀신보다는 도깨비가 더 어울릴 것이다.
80년대부터 일본에서 조용히 시작된 요괴물 붐은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뒤 한국에서도 조용한 반향을 얻고 있다.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물론, 음양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아베노 세이메이가 주인공인 <음양사>는 책과 만화, 영화가 모두 한국에 소개되었다. <지옥선생 누베>는 평소에는 덜렁대고 허술해 보이는 누베 선생이 학생들을 괴롭히는 요괴가 나타나면 요괴를 응징한다는 퇴마물 만화로(애석하게도 절판되었지만),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손안의책’에서는 ‘교고쿠도 시리즈’, ‘음양사 시리즈’, ‘샤바케 시리즈’를 연달아 내고 있다. ‘교고쿠도 시리즈’ 중 <우부메의 여름>은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난 기이한 일을 풀어간다는 의미에서 탐정물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요괴 이야기에 관심있는 사람들보다 넓은 범주의 팬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생명과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등장한다는 면에서는 환상문학으로 읽을 수도 있으며,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이야기가 많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야사로 읽을 수도 있다.
일본 요괴물의 기본, 갓파와 텐구
거북이를 닮은 흡혈귀, 붉은 얼굴의 유괴범!
가장 유명한 요괴들로는 갓파와 텐구가 있다. 갓파는 거북이를 닮은 요괴로, 머리 위에 물이 가득 찬 접시를 이고 있으며 이 접시를 엎지르면 목이 말라 죽는다고 한다. 갓파의 손에는 물갈퀴가 있는데, 다른 동물들을 물로 끌어들여 피를 빨아먹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린 그림들도 있다. 갓파는 사회적으로 차별받아온 특정한 사회집단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텐구는 주로 산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사건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요괴다. 붉은 얼굴에 뾰족한 부리와 날개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어린아이들을 신이 감춘다는 전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생각하면 된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텐구는 중국에서도 쓰이는 개념으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거대한 유성 같으나 소리를 낸다”는 식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유성이나 혜성이 떨어질 때 그 모양이 개와 비슷하다는 뜻으로 ‘하늘의 개’(天狗)라는 이름이 붙었다. 텐구의 특징은 거대하고 붉은 코다. 텐구는 생김새가 약간씩 다른 모양으로 여러 이름이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사악한 짓을 일삼지 않는다. 일본에 난파한 서양인이라는 설도 있다. 갓파와 텐구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요괴는 사회상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면이 있다. 요괴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후손에 남기는 존재는 요괴 자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소설가 교고쿠 나쓰히코는 <우부메의 여름>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요괴의 모양을 결정하는 요인은 살아 있는 사람, 즉 요괴를 보는 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