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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김동현 감독의 신작 <처음 만난 사람들>

이방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하루 종일 물을 먹고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갑자기 목 디스크가 와서 거동이 불편한 전직 철근노동자는 배고프다고 조르는 어린 딸을 보다 못해 한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한손에는 칼을 들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그는 혼자 있는 늙은 노파에게조차 칼을 들이밀지 못하고, 그 지겨운 물을 얌전히 한 모금 더 얻어 마실 뿐이다. <배고픈 하루>의 그는 별수없이 착한 사람이다. 혹은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 친구에게 주겠다며 상어를 메고 대구에 온 섬 총각은 카드놀음에 빠진 친구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고 공원에 발이 묶였다가 비슷한 신세의 동행을 만난다. 상어는 썩어가는데, 어느 미친 여자는 그걸 자기의 죽은 아들이라며 그들을 쫓고 또 쫓는다. <상어>의 그 여자는 병든 사람이다. 힘들고 병들었지만 착한 이들을 위해 김동현 감독의 영화에는 치유가 준비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죄가 없고, 나아서 돌아간다. 허리가 아팠던 아버지는 놀랍게도 펄떡펄떡 뛰어 딸이 있는 집으로 향하고, 두 남자를 쫓던 광녀는 단비에 정신을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얼핏 들어 이건 성긴 이야기다. 그러나 정서의 농도는 무척이나 농밀하다. 2004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단편 <배고픈 하루>와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장편 <상어>를 만든 김동현 감독은 이 두편의 영화로 자기의 세계를 단박에 각인시켰다. 특히 <상어>는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나온 영화들 중 단연 깊은 사유와 통찰을 선보여 발견의 기쁨을 준 영화다. 힘겹고 아프지만 착한 사람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김동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가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늦봄. 탈북자들의 사회적응교육기관 하나원을 떠나 이제 막 인천으로 들어선 탈북자 진욱은 대도시의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첫날 저녁 이불을 사러 나온 그는 마트에 들어가서 자본주의 시장의 규모를 보고 놀란다. 문제는 그 다음. 그는 건물 숲들 사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진욱은 어렵사리 택시를 집어타는데, 그 택시를 몰던 혜정 역시 마침 탈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혜정은 진욱이 집을 찾는 데 동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혜정의 도움으로 집을 찾은 진욱은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부산행 고속버스를 탄다. 거기에서 베트남 출신의 외국 노동자 팅윤을 만난다. 애인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월급도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고생만 하다 나온 팅윤은 애인이 있다는 나주로 향하던 길이다. 그러나 실수로 부산행 버스를 탄 그는 진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진욱은 팅윤의 길잡이가 되어 그의 애인이 있다는 나주로 향한다.

하층민 혹은 갑자기 불시착한 이방인, 엇갈리는 언어와 마음, 그러나 결국 “치유되어 회귀하기”, 마침내 사람이 사람을 구하기. 이 요소들은 <상어>에서도 이미 존재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차이가 있다. <상어>는 일부러 선택한 느슨한 서사와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밀도 높은 상징들의 결연으로 정서를 끌어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김동현 감독은 그 새로운 시도를 “오롯한 리얼리즘”이라고 말한다. 배용균 감독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감독답게 상징의 사용에 능수능란한 그가 지금 리얼리즘을 선언한 셈이다. 사실 그는 “리얼리즘영화에 대해서 재미를 못 느낀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탈북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도 가슴에 와닿았다. 소외된 계층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 두 마디만 갖고 고민했다”고 한다.

“<상어>는 굉장히 상징적이고 판타지적인 영화지만, 그동안 내가 쓴 시나리오들에 비하면 약한 편이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상징적인 요소들을 넣어봤는데, 아무래도 그런 요소를 빼고 오롯한 리얼리즘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고민했던 과정을 드러낸다. 아마도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라는, 그러니까 자기와 거리가 있는 인물을 다룬다는 데서 온 선택인 것 같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덜컥 예술영화제작 지원작으로 뽑혀 4억원의 지원이 결정되었을 때도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떠나서 불가항력으로 가는 거다. <상어> 때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하나씩 나와서 편했는데, 탈북자는 나라는 사람과 거리가 있으니 그들을 리얼하게 다루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어, <상어> 만든 감독이 이런 영화도 하는구나, 이럴 거 아닌가. 그러고 나서 다음에 내가 다시 <상어> 같은 걸 하면 그때는, 아 맞아 저 사람 원래 그런 걸 했던 사람이었지, 하지 않겠는가(웃음)” 라고.

영화의 소재와 스토리를 듣고 나서 혹자는 그럼 취재가 필수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김동현 감독은 정보보다는 직관과 관찰을 믿는 쪽으로 준비해왔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탈북자 한명을 만나봤지만, 각종 정보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관찰을 종합하여 그려낸 것만 못하다는 걸 곧 알게 됐다. 인물들이 써야 할 북쪽 사투리 때문에 <국경의 남쪽>과 <태풍>을 참조 삼아 어미들을 연구했다는 걸 농담처럼 밝히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나를 관찰하면 세상 사람들이 보이고, 세상 사람들을 관찰하면 나를 보게 된다”는 깨달음인 셈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 안에 막 떨어진 그 사람의 감정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건 “역지사지해보면 되는 일”이다.

지금 그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1차 오디션을 통해 추린 180여명의 신인 중 주연배우를 발탁하고 내년 3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동현 감독은 “장편 한두편 만들고 나서 잊혀지는 감독들이 많지 않나. 적어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미 만든 <상어>와 지금 준비하는 <처음 만난 사람들>로 얼마간의 입지를 다져야 할 것 같다”고 단단한 심중을 드러낸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김동현 감독의 예외적인 혹은 새로운 발판이 되는 영화가 될 듯하다.

김동현 감독, 로드무비를 만나다

“이방인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니까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두개의 로드무비다.” 말하자면, 진욱이 길을 잃고 집을 찾는 첫 번째 작은 로드무비가 있다. 그러고 나면 진욱이 친구들을 향해 가다 팅윤을 만나고, 경로를 틀어서 팅윤과 동행하는 두 번째 큰 로드무비가 있는 셈이다. 이 두개의 여행은 당연히 풍경도 다를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는 건물의 각진 풍경들을 빠른 속도로 담을 것이다. 문명을 대변하는 빠른 속도, 그리고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높이 같은 걸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진욱과 팅윤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여행은 흐드러지게 꽃이 핀 풍경들을 넣으려고 한다”고 김동현 감독은 이미지 구상을 들려준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전부 다 겨울장면을 생각했었는데, “그게 너무 클리셰인 것 같아” 늦봄으로 설정을 바꿔 차가운 겨울 도시와 남쪽 지방 꽃 풍경을 모두 담기로 한 것이다. 촬영은 서울 주변에서 많은 부분 이뤄지겠지만, 나주와 부산 광안리 등지에서도 촬영 계획이 잡혀 있다. “사실 첫 번째 시나리오도 그랬다. 내게는 이런 이야기 구조가 내재화되어 있는 것 같다. 어딘가 낯선 데를 가서 사건을 겪고 깨달음을 얻어 돌아오는 것 말이다. 앞으로 만들 이야기도 그런 것들일 것 같다”고 김동현 감독은 말하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는 김동현과 로드무비의 만남을 앞으로도 여러 번 만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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