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타 역사를 새로 쓴 ‘사건’의 주인공
강인오 <My World>
올해 대한민국을 대표했거나 들뜨게 했던 화제의 용어이자 화두 중 하나는 단연 ‘UCC’가 아닐까 싶다. 그런 수많았던 영상이나 홍보물 중에서 음악적으로 크게 화제를 모은 것은 유명한 클래식 곡인 파헬벨의 <캐논>을 멋진 일렉트릭 기타 실력으로 소화해낸 아마추어 뮤지션 임정현이었다. 갑작스러운 텔레비전 깜짝 출연과 이어진 광고음악 삽입 등 매스컴의 힘을 업고 거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은 아쉬웠지만. 그렇다면 다음의 기사 타이틀은 기억이 나시는지?! “기타리스트 강인오, 미 연주음반 사이트서 2위 기염”, “기타 하나로 이뤄낸 작은 한류 강인오씨 미 차트서 2위 기록”. 각각 지난 3월 말쯤 <마이데일리>와 <동아일보>에서 다룬 기사 제목이다. 강인오의 <My World> 앨범은 2005년 11월부터 발매되어 국내에선 굉장히 더딘 홍보가 시작되었었다. 워낙 현 트렌드를 역행하는 음악인데다가 기타 연주곡으로만 채워진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앨범이었고, 가뜩이나 정통 록 음악이 설 자리가 별로 없는 우리네 시장에서 관심을 받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하지만 골수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으로 퍼지던 이 앨범은 놀랍게도 ‘Guitar 9’이라는 해외 기타 전문 사이트의 ‘Top Seller 차트’에서 3월25일자로 2위에 기록되는 사건을 일으켰는데, ‘Guitar 9’은 기타연주 앨범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세계적인 미국 사이트이자 레이블로 불리고 있다. 우리가 존경하는 초절정의 기타리스트들 앨범에서부터 장르를 불문한 세계 곳곳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들의 연주 음반들이 고루 모여 있으면서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연주 앨범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유통되는 곳으로, 세계 도처의 기타음악 마니아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곳에서 1위를 차지한 드림 시어터의 기타리스트 존 페트루치 앨범의 바로 밑에 강인오의 앨범이 2위에, 그 아래 4위엔 기타 영웅 조 새트리아니의 앨범이 순위를 차지했으니 기타 연주계에선 놀라운 사건이었다. 자신의 밴드 앨범이 예전에 발매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강인오는 이번에 ‘록’이라기보다는 ‘퓨전’적인 연주를 능숙하게 보여주는데, 테크닉을 위한 테크닉이 아닌 음악과 멜로디가 살아나면서도 사운드 메이킹과 리듬, 그루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이루어내 굳이 자세한 소개가 없다면 외국 기타리스트라 착각할 만한 ‘우직하고 완성도 높은’ 음악적 결과를 이뤄냈다. 거기에 유명 기타리스트 블루스 사라세노의 참여나 재킷 디자인에 다크 트랜퀼리티 멤버 니클라스의 도움은 한결 예술성을 배가했다.
성우진/ 대중음악평론가·방송작가
성우진 최고의 음반 리스트
(무순. 국내음반에 한정)
강인오 <My World>(드림온레코드) 고찬용 <After Ten Years Absence>(도레미미디어) 머스탱스 <The Mustangs>(비트볼뮤직) 메쏘드 <Survival Ov The Fittest>(서울음반) 몽라 <꿈꾸는 아이>(IO뮤직) 소히 <앵두>(CJ뮤직) 송홍섭(The Phoenix) <Meaning Of Life 1>(서울음반)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파스텔뮤직) 캐비넷 싱얼롱즈 <Little Fanfare>(도레미미디어) 푸딩 <Pesadelo>(스톰프뮤직)
블루스와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넘나드는 두 거장의 손놀림
알리 파르카 투레 & 투마니 디아바테 <In The Heart Of The Moon>
개인적으로 올해 세계 음악계의 가장 큰 손실은 말리의 거장 알리 파르카 투레(1939∼2006)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여러 면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음악이 처음 미국에 소개됐을 때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 알리 파르카 투레가 연주하는 서부 아프리카 말리의 전통음악이 존 리 후커, 머디 워터스 같은 블루스 거장들의 음악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블루스와 너무나도 비슷한 그의 음악을 조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블루스의 뿌리가 어디인지도 규명됐다. ‘블루노트 음계가 많이 쓰여서 블루스다’, ‘슬퍼서 블루스란 이름이 됐다’는 그간의 논란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라이 쿠더가 그를 모시고 발표했던 <Talking Timbuktu> 앨범은 빌보드 월드뮤직 앨범차트에서 무려 32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In The Heart Of The Moon>은 코라(Kora: 서부 아프리카 전통 현악기, 보통 21현에서 25현으로 구성되며 투명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지녔다)의 명인 투마니 디아바테와의 조인트 앨범이다. 이 음반은 지난 가을 극찬 속에 발표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Savane> 앨범과 함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무리한 작품으로, 알리 파르카 투레의 어쿠스틱 기타와 투마니 디아바테의 코라가 중심이 된 연주를 들려준다.
어쿠스틱 기타와 코라의 조화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잡지 <MOJO>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앨범”이란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수록곡에서 영롱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어쿠스틱 악기 특유의 투명함을 맛볼 수 있다. 블루스와 서부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편안하게 넘나드는 두 거장의 손놀림은 마치 소리를 뜨개질하듯이 섬세하고 부드럽다.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듯 구슬프게 노래하는 <Ai Ga Bani>(아이 가 바니: 당신을 사랑해요)는 앨범의 백미다. 이 음반으로 다시 한번 그래미상을 탔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만큼 알리 파르카 투레는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의 풍모를 뿜어낸다. “세계는 위대한 목소리와 관대한 영혼을 잃었다.”(<BBC>)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
송기철 최고의 음반 리스트
(무순. 수입음반 포함)
알리 파르카 투레 & 투마니 디아바테 <In The Heart Of The Moon>(수입) 비아 <Cora??o Vagabundo>(소니BMG) 조앤 셰넌도어 <Peace & Power>(알레스뮤직) 마누 차오 <Clandestino>(EMI) 세자리아 에보라 <Rogamar>(소니BMG) 아누아르 브라헴 <Le Voyage De Sahar>(수입) 수아드 마시 <Mesk Elil>(수입) 장 홍 얀 <Ambush On All Sides>(수입) 바우 <Cape Verdean Melancholy>(수입) 카에타노 벨로조 <Ce>(수입)
복고는 퇴행이 아니다, 복고는 쇼크다!
날스 바클리 <St. Elsewhere>
거개의 복고 방법론은 과거의 소재 자체를 끌어들이는 리메이크 아니면 멜로디와 리듬의 응용에 중점을 둔다. 데인저 마우스와 시-로(Cee-Lo)의 듀오 날스 바클리는 그런 구태를 거부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멤피스나 모타운 솔이 활강하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흔해빠진 복고를 가져오는 주범이라 할 느낌의 모사가 아닌 녹음 방식과 스타일의 완전 재현과 재활이라는 방식을 취했다.
첫곡 <Go-go Gadget Special>부터 ‘백 투 더 패스트(past)’의 기(氣)가 펄펄 흐른다. 올해 영미 음악시장과 차트를 초토화한, 그것도 다운로딩만으로 차트 정상을 쾌척한 스매시 <Crazy>는 그 정점이다. 드럼을 비롯한 반주와 보컬 녹음을 그 시절 방식에 맞춰 거행하면서, 완벽한 복고의 산물을 일궈냈다.
복고의 상업성과 정체성을 구분하는 영미 음악 고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Crazy>의 마력에 미쳐 들어갔고, 우리도 CF에 삽입되었으니 거의 미쳤다. 데인저 마우스의 사운드 뒤집기도 빼어나지만 멜로디에 빈티지 로망을 부여하는 시-로의 보컬은 정말 훌륭하다. 이 곡 외에 <Gone Daddy Gone> <Smiley Faces>나 결정적으로 <Just A Thought>는 이들이 과거를 ‘현재 시제’로 얼마나 창의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잘 바꿀 줄 아는지를 웅변한다. 앨범 전체의 수록곡이 열넷이나 되는데도 러닝타임이 37분반(??)에 그치는 것도 그 시절의 미니멀리즘을, 간결함을 선호하는 이 시대의 감각과 연결시키는 것 또한 영리함의 증거다.
복고는 잘해봤자 퇴행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이 시대에 쇼크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 방법론, 더 나아가 미래지향성도 소지하고 있음을 말해준 것이다. 복고라는 방식으로 지긋지긋한 복고의 상업성을 퇴치한 쾌보. ‘크레이지’ 날스 바클리를 빼고 올해 음악계는 정리가 안 될 것 같다. 백 투 더 퓨처!!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최고의 음반 리스트
(국내 음반 및 라이선스 음반에 한정)
1. 날스 바클리 <St. Elsewhere>(워너뮤직) 2. 배치기 <馬耳東風>(포니캐년) 3. 제이슨 므라즈 <Mr A-Z>(워너뮤직) 4. 전제덕 <What Is Cool Change>(서울음반) 5. 러브홀릭 <Nice Dream>(서울음반) 6. 밥 딜런 <Modern Times>(소니BMG) 7. 도널드 페이건 <Morph The Cat>(워너뮤직) 8. 뮤즈 <Black Holes And Revelations>(워너뮤직) 9. 장혜진 <4 Season Story>(서울음반) 10. 크라잉넛 <OK 목장의 젖소>(도레미미디어)
그리스의 ‘상처뿐인 영광’에 대한 슬픔의 대서사시
엘레니 카라인드루 <Elegy Of The Uprooting>
영화음악가 엘레니 카라인드루가 아테네에서 공연한 주옥같은 실황 앨범. 엘레니 카라인드루는 그리스가 자랑하는 영상시인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음악을 담당해왔다. 이번 공연 실황에는 카메라타 오케스트라와 ERT합창단, 그리스의 국민가수 마리아 파란투리까지 우정출연해서 앨범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수록곡은 영화 <안개 속의 풍경>(1988)의 삽입곡 <Adagio>를 비롯해 <울부짖는 초원>(2004)의 <Prayer>, <영원과 하루>(1998)의 <By The Sea> 그리고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1984), <비키퍼>(1986) <율리시즈의 시선>(1995) 등 카라인드루가 맡았던 앙겔로풀로스 영화의 음악들이다.
카라인드루의 음악은 듣는 이를 압도하는 슬픔의 서사시이다. 앙겔로풀로스의 근작 <울부짖는 초원>에서도 보여지는 것처럼 그리스가 살아온 역사의 흥망성쇠는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하다. 그녀의 음악이 우리 마음에 더욱 깊이 저며온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상시키지만 <태극기…>가 지나친 총격전으로 일관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표현하려고 했던 반면 <울부짖는 초원>은 전투신이 거의 없이 여주인공의 흐느끼는 절규장면 하나만으로도 총격전 이상의 감동을 보는 이에게 준다. 이에 덧붙여 영화의 슬픔과 감정의 깊이를 더하는 건 그의 파트너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엘레지 음악들이다. ‘뿌리뽑힘의 절망에 대한 엘레지’라는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듯, 이번 공연 실황 앨범은 그 같은 그리스의 ‘상처뿐인 영광’의 역사를 두장의 CD에 담아낸 것이다. 우리 민족의 그것과 같아서, 동병상련의 정마저 느끼게 하는 음악이다.
전영혁/ <전영혁의 음악세계> DJ
전영혁 최고의 음반 리스트
(수입음반 포함)
1. 엘레니 카라인드루 <Elegy Of The Uprooting>(수입) 2. 키스 자렛 <The Carnegie Hall Concert>(C&L뮤직) 3. 트리오 비욘드(잭 디조넷, 존 스코필드, 래리 골딩스) <Saudades>(C&L뮤직) 4. 디노 살루찌 그룹 <Juan Condori>(수입) 5. 아누아르 브라헴 <Le Voyage De Sahar>(수입) 6. 드림시어터 <Score- 20th Anniversary World Tour Live With The Octavarium Orchestra>(워너뮤직) 7. 시르크 드 솔레이유(태양의 서커스) <Corteo>(수입) 8. 에릭 클랩튼 & J.J.케일 <The Road To Escondido>(워너뮤직) 9. 블랙모어스 나이트 <The Village Lanterne>(수입) 10. 데이비드 길모어 <On An Island>(소니BMG)
사색적 울림의 뽕짝, 장난스럽거나 우아하거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입술이 달빛>
올해 최고의 음반과 올해의 가장 흥미로운 음반은 다르다. 음반을 고르고 소개하는 입장에서, 올해 최고의 음반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좋다는 것을 따라 말하면 된다. 그러나 올해의 가장 흥미로운 음반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 자신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음반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혼자서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으며, 승패가 어떻게 되건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두 번째 음반에 대해 얘기할 때면 왼손이 오른손을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두 번째 음반에는 ‘뽕짝’ 리듬이 차분히 넘실거리는 기묘한 분위기의 포크송들이 들어 있다. 쿵 짝 쿵 짝 쿵 짜라 쿵 짝. 사람들은 포크를 ‘사람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진실한 음악’이라 말하곤 한다. 그러나 뽕짝 역시 (좀 다른 방향이긴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둘을 섞어서 안 될 건 없지 않은가? 캠프파이어에서 장난처럼 통기타를 두드리며 송대관의 <네박자>를 부르는 것 이상의 섬세한 음악적 시도가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또한 그것이 엽기적(이기를 바라는) 복고와 키치로 범벅된 떠들썩한 울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사색적 울림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노래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이상적인 답변을 들려준다. 음반의 타이틀 곡인 <입술이 달빛>, 구슬프게 뚱땅거리는 <고양이 소야곡>, ‘뽕짝의 재구성’을 감행하는 <또 돌아보고>와 같은 곡들에는 ‘전통’을 굳이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전통의 일부가 된 음악이 얻어낸 여유와 부드러움이 있다.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통속적이며 때로는 우아하다. 뽕짝이 존재하는 한국이 아니면, 뽕짝이 존재하는 21세기의 한국이 아니면, 뽕짝과 인디 신이 존재하는 21세기의 한국이 아니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음반이다. 이 음반을 올해의 최고작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유일무이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하듯이.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음악웹진 [weiv](http://weiv.co.kr) 편집장
최민우 최고의 음반 리스트
(무순. 국내 음반 및 라이선스 음반에 한정)
날스 버클리 <St. Elsewhere>(워너뮤직) 디셈버리스츠 <The Crane Wife>(EMI) 마이 케미컬 로맨스 <The Black Parade>(워너뮤직) 머스탱스 <The Mustangs>(비트볼뮤직) 벨 & 세바스찬 <The Life Pursuit>(알레스뮤직) 불싸조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파스텔뮤직)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입술이 달빛>(파스텔뮤직) 저스틴 팀버레이크 <FutureSex/LoveSounds>(소니BMG) 펑카프릭 부스터 <One>(타일뮤직) 피들밤비 <Bombi Rocks>(비트볼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