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하는 날 아침,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오늘내일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연세도 많으신데다 몇번 위험한 고비를 넘긴 중풍 환자셨기 때문에 울먹이는 엄마 목소리가 내겐 더 불안하게 들렸다.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도 정말 그냥 가도 되는 걸까 조마조마했다. 미국에 도착해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현진아,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진짜? 하고 어색하게 되물은 나는 어떤 소식을 예상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무감각했다. 고단한 뒷바라지가 계속될 걸 알면서도 한고비 넘기셨단 소식을 바라긴 했을까? 공항에서 듣는 이런 이야기는 비현실 세계 속으로 들어가라는 신호 같다. 2001년,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공항에서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수술이 다음날이니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기분이 비슷했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면 청천벽력이었겠지만, 오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인생과 비슷한 공항에서는 그저 뜬구름 같은 이야기였다. 때마침 시작된 성수기로 귀국 일정을 바꾸지 못한 채 슬픔과 몽롱함의 중간쯤을 헤매다 공항 출구를 나섰다.
미국에서 본 영화는 <행복을 찾아서>였다. 윌 스미스가 그의 친아들인 제이든 스미스와 출연해 눈물겨운 부성애를 보여준다. 윌 스미스의 과장되지 않은 연기도 훌륭했지만, 친아버지와 함께한 꼬마 제이든의 연기는 이 상황 속의 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교회의 노숙자 피난처를 전전하는 아버지에게 “You are good papa”라고 할 때는 이젠 아버지가 없는 엄마 생각에 콧날이 시큰했다. 바쁜 엄마를 면회오라 투정하고 외할머니 잔소리에 삐쳐 단식하는 등 내 생각엔 짐스러운 외할아버지였지만, 엄마에게는 만감이 오가는 아버지였을 게다. 못났거나 잘났거나 외면하려고 하면 마음 한쪽이 덜거럭거려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그런 사람. 내게 아버지가 그렇듯 엄마에게 외할아버지도 애틋했단 걸 뒤늦게 인정한다. 외할아버지에게도 엄마는 끔찍하게 소중한 딸이었다. 첫딸이기도 했고 좋은 것 있으면 형제들 몰래 주셨다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으니까. 내 아버지도 그렇다. 머리 좀 컸다고 버르장머리 없는 말을 뱉어내도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끝없이 따뜻한 눈길을 주신 것 감사하다. 인사차 끌려나간 술자리에서 “자긴 좋은 여자야” 하며 뻐꾸기를 날리던 40대 중반의 남자도 샌프랜시스코에서 공부한다는 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라며 떠받들지 않았던가.
시신을 뵙고, 장례식장에 오는 손님을 맞으며, 꽃상여를 쫓아 선산에 올랐던 할머니 때와 달리, 외할아버지는 2주 전 병원에서의 모습이 마지막이다. 병실 유리창 너머로 잘가라고 손 흔드시던 외할아버지 모습이 말 그대로 생생한데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하니 먹먹한 마음에 아쉬움은 끝이 없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좋아하실 생각에 사다드렸던 세검정 고개 너머 분식집의 만두며, 병원 앞 편의점의 붕어싸만코는 외할아버지를 기억해낼 소품들이 되었다. 물 대신 드시던 두유를 보면 목이 메일까? 새삼 헤아려본다, 오늘이 내 부모가 사는 가장 젊은 날이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