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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있수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 그곳에 가고 싶다
김수경 2006-12-19

언제나 현장에 가면 즐겁다. 웃는 얼굴로 반가워하는 스탭들을 만나는 일만큼 유쾌한 업무는 없다. 과거 시네마테크에서, 학교에서, 영화관에서, 영화제에서, 술집에서 마주쳤던 얼굴들과 마주 선다. 애써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민망한 순간도 잦지만 신경림의 <파장>에 나오는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즐겁다”라는 첫 구절처럼 아는 얼굴이 카메라를 메고, 조명을 켜고, 붐마이크를 메고, 클래퍼를 치는 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 봤어요? 죽이지 않아요?”라는 칭찬을 건네거나 “<**>은 아직도 잔금 안 줬대요? <**> 현장은 분위기 정말 안 좋다던데…”라고 염려하는 그들의 얼굴은 살아 있다. 땀으로 얼룩지고 그을은 그 얼굴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나태한 내 일상이 교차편집돼 스쳐간다. 미뤄지는 기사 마감, 스팸메일 속에 포위된 탓에 잘못 지워버린 메일, 아는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취재 약속 번복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요즘 현장에 가면 슬프다. 현장을 보여주는 시간은 갈수록 겨울 낮처럼 짧아진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도착한 지방의 촬영현장에서 밥 먹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에 현장을 바라본다. 말 한마디 건네기도 어렵고 스탭들은 취재진이 떠난 뒤의 빡빡한 촬영 스케줄을 걱정하느라 근심 가득한 얼굴이다. 맛있는 밥을 먹고 돌아왔을 때, 현장을 공개하느라 촬영 시간에 쫓겨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몸을 움직이는 피곤한 그들을 지켜보는 일도 괴롭다. 시간이 짧을수록 좋은 사진을 건지려는 사진기자들의 몸부림은 처절해지고, 현장 스탭들의 조바심도 농밀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쓸데없는 몸싸움과 험담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중간에 낀 마케팅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그래도 현장에 가고 싶다. 나는 축구선수가 되진 못했지만 TV 중계만으로 만족했던 순간은 없다. 회사에 입사한 뒤 가장 안타까웠던 일 중의 하나가 수요일 저녁에는 회의 때문에 축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니까. 칼바람이 몰아치는 피치에서 몸을 던지는 그들을 텅 빈 관중석에서라도 같이 숨쉬며 바라보고 싶었다. 포토라인 밖 먼발치에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기억하고, 전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축구선수는 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포토라인을 뚫고 그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 수는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