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는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지만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말도 소리도 거의 없으며 무한의 우주, 대규모 우주선과 널따란 방과 길쭉한 현관을 보여주는 화면들이 이어지고, 카메라에 잡힌 것들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아 정물화 같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볼 때마다 2시간 반 걸리는 뜨거운 온탕에 목욕을 한 것처럼 지친다. 특히 내용은 영화가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 스스로가 공백을 채워서 줄거리의 조각들을 스스로 메워야 한다. 1999년 달의 티코 운석구멍에서 커다란 모놀리스가 발견된 2년 뒤에, 이 수상한 발견과 관련된 목성 미션이 이뤄진다. 우주비행사인 풀 박사와 보우맨 박사 그리고 생명유지장치를 비롯한 모든 기술을 책임지는 ‘할9000’이라는 지능슈퍼컴퓨터가 이 미션의 동행자다. 미션이 진행되면서 컴퓨터와 인간간에 불신으로 갈등이 생기고, 서로를 제거하려는 가운데 결국 보우맨 박사만 혼자 남아 모놀리스를 찾아가 일종의 재생을 경험하면서 영화는 애매모호한 결론으로 끝난다. 해석은 다양하고 많지만, 문명화를 상징하는 모놀리스를 둘러싼 이 이야기는 지능생명의 진화와 기술발전에 대한 감탄, 합리화된 인간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 비유담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깊게 보는 것이 힘들지만, 오늘날 사회에서 매일매일 닥치는 상황과 문제와 연관시킬 수 있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암시를 주는 것이 확실하다.
며칠 전에 신문을 읽으면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와 같은 무력감을 느꼈다. 일본 대형 할인매장에 설치된 계산대 로봇에 대한 보도였다. “일본 슈퍼, 셀프계산대가 좋아!”라는 제목에서 그 느낌표는 위에서 말한 ‘감탄’에 해당한다. 나머지 기사 내용도 거의 경탄조로 감탄하면서 쓰여 있었지만, 읽을 때는 영화에서 등장한 텅 빈 ‘디스커버리’ 우주선과 부드러우면서도 왠지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단조로운 할9000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커다란 할인매장에 나열된 무한한 물건들을 품는 기나긴 진열대, 소비자가 선택 혼란의 스트레스를 풀고 더 많은 물건을 바구니에 넣게 하게끔 들려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음악, 그리고 늘 똑같은 인공목소리로 나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하는 계산대 로봇. 일본은 기술발달, 특히 로봇기술 발달에서 세계적인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내년까지 자동계산대 보급은 전체의 2%인 5천대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르면, 손님이 별다른 의사소통 없이 알아서 물건의 바코드를 컴퓨터에다 대고 카드를 긁으며 장보기를 혼자서 해결하는 풍경은 그만큼 흔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기술은 있다. ‘유비쿼터스’(언제나 어디서나)라는 개념으로 최근에 뜨는 기술발전이다. 한 한국 재벌의 신문광고는 “유비쿼터스는 지우개다”라는 표어로 선전하고 있다. 일본 슈퍼처럼 여기서도 메시지는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당신을 불편하게 했던 것들”이다. 광고면에서는 원래 계산대 앞에 줄 서면서 짜증나는 손님과 계산하는 아가씨를 보여주는데, 아가씨는 제거한 것처럼 지워져 공백밖에 남지 않는다. 결론은 계산하는 ‘사람’의 존재는 불편하다는 데 있다. 요컨대 비용이 드는 직원과 같은 인간은 불편하지만, 수입이 되는 소비자는 편의로 여긴다(덧붙여서 말하자면 현재 한국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 판매직/서비스업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자유’를 즐기기 위해 돈 버는 사람이 합리화되어 속속 사라지면 과연 돈을 쓰는 사람은 있을 수 있을까? 고객조차 로봇으로 대체할 수도 없고 말이다.
물론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서 클라크의 원작 소설 <오디세이> 4부작 중 1부일 뿐이다. 영화로는 만들어지지 않은 마지막 책에서는 재생한 풀 박사가 다시 얌전해진 할9000과 함께 목성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국식 ‘행복한 결말’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과연 ‘미국식 결말’이 그렇게 행복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우리를 정말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결국 무엇인가에 대해서 꼼꼼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