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볼 때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되도록 많이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인간들은 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짧으면 5분 길면 20분, 그 짧은 시간에 주고받은 얘기가 그들이 나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전부다. 내 안에 A, B, C, D, E, F, G가 있다 해도, A만 말했다면 A만 알 것이다. A를 질문했을 때 스스로 영역을 확장해 B도 말하고 C도 말하고, 무조건 많이 말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질문이 오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손을 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행동이 항상 겸연쩍게 느껴졌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나를 뽑아달라고, 포장하고 생색내고 광고하는 것이 객쩍고 부끄러워서, 하기 싫었다. 이런 데서 나를 저런 눈초리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내 얘기를 해야 하나, 한다고 알아나 줄까. 자조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직장이라는 데를 가보겠다고 처음 면접을 보러 다닐 때 결과는 늘 별로였다. 묻는 질문에 데면데면 답하다보면 이미 면접관들의 마음은 떠나 있었다. 그렇게 방을 나올 때면 ‘왜 좀더 잘하지 못했을까’ 늘 후회를 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알리는 것이 부끄럽거나 유치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근래에 들어서야 깨달았다. 면접을 잘 못보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후회를 하면서다. 무심하고 게으른 나는,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건 서로의 인간성과 몇번의 제대로 된 타이밍이 결정하는 거라 생각했다. 노력을 해서 되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나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니까, 서로 호감을 느끼고 인연이 닿으면 친해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인 거라고. 친한 사람들과 다정하게 지내면 되지, 나한테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나를 열고 팔고 할 게 뭐 있냐고.
한데 그런 게 아니었다. 면접에 시간이 정해져 있듯, 사람과 손을 잡는 일에도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일하는 것만도 피곤하다고 모른 척하고 지냈던 사람들이, 그들과의 인연이 끝나는 순간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것을, 이곳을 나갈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내가 좀더 내 진심을 들여다보았다면, 내가 느끼는 호감을 좀더 많은 말과 행동으로 그들에게 표현했더라면, 함께하는 동안 더 많은 따뜻한 기억을 가질 수 있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도, 역시 미처 몰랐다.
대중음악학원에 다닐 적에 돈을 벌어보겠다고 다니던 작은 바에서 오병철 감독님을 만났다. 사는 곳이 달라지고 하는 일이 달라지면서, 그분과의 따뜻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전화를 한번 해야지, 늘 미루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그분은 세상을 뜨셨다. <씨네21> 뉴스난에 실린 부고를 보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우습게도 ‘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다. 떠돌고 방황하느라 남들보다 뭐든 늦었던 내 인생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늦었지만 조그맣게 말합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건강하세요. 모두 너무 잘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