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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탱고의 열두 스텝으로 믿음을 이야기하다
ibuti 2006-12-08

‘가정 삼부작’으로 불리는 벨라 타르의 초기작들은 동유럽 뉴웨이브 영화의 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던 스타일은 이후 사라졌지만,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심각한 드라마 속에서 한층 깊이 다뤄졌는데, 이는 당시 헝가리가 정치·사회·경제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탄탱고>는 <겁벌>에서 <런던에서 온 남자>로 이어지는, 벨라 타르와 작가 라즐로 크라즈나호르카이의 공동작업 중 두 번째 것이다. <사탄탱고>는 타르 영화의 밑바탕인 우울의 정서를 극한까지 실험한다. 끝없이 퍼붓는 늦가을 비와 구슬픈 아코디언 음악과 운명을 재촉하는 시계 소리는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는 카메라와 함께 (탱고의 12스텝과 상응하는) 영화의 12챕터를 인상짓는다. 음모, 배신, 불신에 휩싸인 인물 사이를 느리게 유영하는 카메라가 황폐한 집단농장을 파헤치는 전반 여섯 챕터와 비밀이 드러나는 결말까지 난해한 구조물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는 후반 여섯 챕터는 앞뒤 두개의 우화를 완성한다.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집단농장의 몰락이 공산주의 붕괴의 은유라면, 자신이 속한 세계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잃은 존재라는 좀더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된다. 타르 영화의 염세관에도 불구하고 <사탄탱고>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믿음을 시험받는 두 사람의 챕터에 들어 있다. 각각 관찰자와 소외받는 자로 등장하는 의사와 소녀에겐 여덟 주인공보다 훨씬 긴 챕터가 할애되는데, 문을 걸어 잠그고 끝내 믿음을 부정하는 의사와 달리 고양이와 자기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처연함을 넘어 삶과 죽음의 의지 사이의 신비한 영역에 도달한 소녀 에스티케는 브레송과 베르나노스가 창조한 ‘무셰트’의 동생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사탕탱고>는 믿음에 관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탱고는 두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한 춤이다. 파괴된 종탑과 들리지 않는 종소리로 인해 믿음을 차단당한 <사탄탱고>의 여덟 주인공이 마주한 짝은 신이 아니라 사탄일 수밖에 없었을 터, 탱고를 출 때면, 아니, 살아가는 매 순간 정면을 살필 일이다. 영화사엔 거대한 상영시간으로 인해 괴물로 취급받는 걸작이 몇 있다. 대표적 예인 자크 리베트의 <아웃 원>,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 한스 유르겐 지버버그의 <히틀러> 등은 DVD 시대가 막 내리는 지금도 DVD를 찾을 길 없는데, 그런 상황을 뚫고 이 시대의 괴물 <사탄탱고>가 DVD로 선보인 건 작은 기적이다. 수잔 손택이 “남은 삶 동안 기꺼이 매년 보겠다”던 작품을 우리도 집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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