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감독과 독자와의 대화’가 끝난 뒤의 일이다. 핸섬한 감독에게 여자들이 줄을 섰고, 핸섬한 감독은 여배우에게 선물로 받은 몽블랑 펜을 꺼냈다. 나는 조금은 부러운 표정을 지은 채 왼쪽 눈은 몽블랑 펜의 궤적을, 오른쪽 눈은 건너편 행사용 탁자에 쌓인 망고 주스를 보면서, 망고 주스를 달라고 하면 그냥 선선히 줄까, 아니면 독자들 마셔야 하니까 안 된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게 와서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내게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아니 내게도 팬이 생기다니, 겨우 한명이지만 기분이 좋군. 원래 내 팬들이 있는데 그동안 쑥스러워서 안 나타난 건지도 몰라, 이런 왕자암 말기 증상을 보이며 그 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혹시 담양에서 편지를 보냈던 그 사람일지도 모르잖아?(내가 받은 유일한 육필 팬레터!) 그런데 그분은 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 여자분은 내 이름을 몰랐다. 사회를 봤으니 얼굴은 지금 막 알았겠지. <씨네21> 기자라는 이유로 사인을 받고 싶다니(멀리서 본 사회자가 근사했나?). 몽블랑이 아닌 모나미 펜을 꺼내 사인을 하면서 내 손은 떨고 있었다.
밖에 있을 때 나도 ‘엘리트적’이라니 그러면서 욕도 했지만 실은 이곳을 선망했다. 최종 면접을 본 뒤에 한동안 연락이 없었을 때는 목덜미가 뻣뻣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애타게 대답을 기다리던 때가 두번 있었다. 첫 번째는 여인에게 처음으로 다리 만져도 되느냐고 물어봤을 때고 두 번째가 바로 그때였다. 난 아닌 척하며 잘난 척하고 다녔지만 떨어질까봐 노심초사였다. 목의 뻣뻣한 기운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떠날 날이 왔다. 떠날 때가 되니 애인과 사귀다가 헤어지는 기분이다. 우리 다음에 꼭 만나, 이러고 가야 할까, 아님 말없이 코트 깃을 올리고 낙엽을 저벅저벅 밟으며 <제3의 사나이>처럼 걸어가야 하는 걸까. 애인과 주고받은 편지는 앙코르와트의 나무 구멍에 넣어야 할까, 아니면 라이터 기름으로 태워야 할까.
애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삶, 그 이후의 삶을 가불하고 싶었다. 멀리서 애인의 해사한 웃음을 훔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내 전공은 짝사랑이고 부전공은 멀리서 연애편지 쓰기였으니까. 내 다음 직업은 전업주부인데 요즘은 쌀알이 익사당한 뒤 얼마나 적당히 부풀어 올라야 밥짓기에 적당한가, 아내에게 차를 줄 때는 받침과 함께 쿠키 하나를 올리는 건 어떠한가 등을 연구한다. 집안 환경미화에도 부쩍 신경을 쓰면서 향후 쫓겨날 위험성을 줄이는 방안을 연구 중인데, 시중에서 내 몸값이 급락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고 놀고 있던 아내의 취직을 자아실현이라는 이유로 종용했다. 그녀의 자아실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바람에 미뤄뒀던 운전면허를 먼저 딸 생각이다(버스와 전철 속에서도 기사쓰기-애인의 명령을 생각하는 나의 버릇상 운전은 매우 위험했던 것이다). 나의 낡은 애마가 천관녀처럼 철없이 바퀴를 굴려 애인쪽으로 다시 향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으나(회사를 오랫동안 다닌 선배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니, 그럴 법도 하다) 이 소심한 운전사가 칼을 들어 바퀴를 내리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몽블랑 펜 들고 다시 올게, 속삭이며 차를 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