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의 마스터’ 김병욱 감독이 돌아왔다. 아쉬움 속에 종영된 <귀엽거나 미치거나> 뒤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고 11월 초 내놓은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말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로 이어지며 한국 가족시트콤의 원형을 만들어낸 김병욱 감독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가장 ‘가족적’이지만 ‘가족시트콤’은 아닌 그 무엇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시작부터 하이킥을 날리며 거침없이 돌진해오는 문제적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가족은 소우주, 우주가 요동치는 웃음이 왔다MBC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집은 종종 광활한 공간처럼 묘사된다. 순재(이순재)가 잘못을 저지른 그의 자식들을 뒤쫓을 때, <거침없이 하이킥>의 카메라는 수평구도로 집을 바라보며 집을 최대한 넓게 보여준다. 그렇게 넓게 묘사된 집에서는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던 거대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평소에는 몇 걸음이면 나올 수 있었던 거실이 한밤중에 몰래 들어와 아이를 데려가려는 민용(최민용)에게는 한없이 넓어 보이고, 순재의 추격을 피해 민용의 방으로 도망친 손자 윤호(정일우)는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문틀을 자르고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김병욱표 시트콤의 최적의 형태, <거침없이 하이킥>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가족은 결코 작은 공동체가 아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가족을 통해 ‘모든 것’을 한다. 가족시트콤의 틀 안에서 액션과 서스펜스, 심지어 추리까지 등장하는 것이 가족시트콤과 타 장르의 결합이라면, <거침없이 하이킥>이 캐릭터의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방식은 기존 가족시트콤보다 훨씬 더 실제 세계의 모습에 가깝다. 민용은 이혼한 아내 신지(신지)와 미묘한 애정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동시에 집에서는 해미(박해미)와 갈등관계를 맺고 있는 순재의 둘째아들이며,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동료 교사 민정(서민정)이나 학생들과 또 다른 관계를 맺는다. 이들 중 누가 어떤 방식으로 민용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다. 독특한 반어법으로 민용을 괴롭히는 교감처럼, 잠깐씩 나오는 단역이라도 얼마든지 주인공을 괴롭힐 수 있고, 개성댁(이수나)의 수사를 맡는 형사는 지금은 단역이지만 언제든지 스토리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김병욱 감독 자신이 SBS <LA 아리랑> 이래 확립한 기존 한국 시트콤은 그 회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캐릭터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나열, 에피소드별로 특정 캐릭터에게만 중심이 맞춰진 단선적인 세계였다. 그러나 <거침없이 하이킥>은 때론 주인공조차 불분명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어떤 사건이든 벌어질 수 있는 실제 세계에 다가선다. 변비로 고생하는 준하(정준하)의 에피소드는 표면적으로 준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준하의 변비로 인해 문희(나문희)는 약국에서 강도를 때려잡고, 민호(김혜성)는 유미(박민영)와 다투며, 윤호는 친구들과 싸운다. 그리고 그것들은 평범한 일상을 액션과 서스펜스 등으로 표현하는 과장법에 의해 웃음을 유발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성장한 민용의 아들(서경석)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으로 1회를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가족이란 단위는 사실상 모든 것이 존재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그에 있어 어떤 방법도 가능한 소우주다. 먹을 것 하나 때문에 기분이 틀어지는 가족 이야기와 가족을 통한 이라크전에 대한 풍자가 공존했던 SBS <똑바로 살아라>처럼 김병욱 감독은 가족을 통해 가족 안과 바깥, 즉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가족을 통해 다루곤 했었다. 알고 보니 가족은 온갖 이해관계와 평등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권력관계로 얽힌 공동체였고, 그런 가족의 모습은 세상을 풍자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했다. 모든 장르를 통해 진지함과 유머를 오갈 수 있고, 현실세계에 가까운 복잡하고 불확실한 일상이 들어서며, 심지어 먹는 것과 관련된 준하와 문희의 에피소드나 순재가 해미에게 가정의 주도권을 넘기까지의 역사처럼 캐릭터의 연대기까지 등장하는 <거침없이 하이킥>은 김병욱 감독이 지금까지 해온 그 모든 것들을 하는 데 가장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진 세계다.
관계를 통한 캐릭터 표현, 현실적 에피소드와 장르의 결합
그러나 <거침없이 하이킥>의 성과는 그런 시도 자체가 아니라 이 복잡하고 거대한 8인 가족의 세계가 초반부터 ‘거침없이’ 완성됐다는 데 있다. <순풍산부인과> 시절부터 김병욱 감독은 이미 <거침없이 하이킥>의 모든 요소를 보여주었다. <순풍산부인과>에서도 영규(박영규)가 자신이 방귀를 뀌었다는 누명을 벗기 위한 추리극도 보여주었고,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작품 초반 주현(노주현)이 가족뿐만 아니라 소방서에서 벌이는 에피소드를 통해 세계를 확대시켰으며, <똑바로 살아라>의 후반 에피소드 중 상당수는 여러 캐릭터의 에피소드가 하나로 얽혀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풍산부인과>가 단지 재미있는 시트콤이 아닌 사람들의 인생사를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기억하게 만든 것은 첫회가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조금씩 ‘새드 엔딩’을 맞이하는 마지막 회였다. 그의 시트콤은 모든 캐릭터가 성대모사의 대상이 됐던 <순풍산부인과> 이래 늘 캐릭터 각각의 특징을 잡아낼 수 있는 과장된 에피소드로 캐릭터를 부각시킨 뒤 좀더 깊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시트콤은 <귀엽거나 미치거나>처럼 단순한 멜로드라마 패러디와 현실적인 연애담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등 기존 시트콤과 현실의 세계가 기묘하게 섞이곤 했다.
반면 <거침없이 하이킥>은 캐릭터 개개인의 묘사 대신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캐릭터를 조금씩 쌓아나가는 방법을 선택해 그 관계가 만들어내는 시트콤 속의 전체적인 세계를 좀더 빠르게 자리잡게 한다. 서로 전혀 다른 취향의 민용과 해미의 대립을 통해 가족의 권력관계를 먼저 부각하고, 만두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두 사람의 취향을 자연스레 알려주는 것이다. 덕분에 비현실적일 정도로 과장된 에피소드는 상당 부분 사라지고, 대신 그 현실을 서스펜스와 공포 등 장르적인 특성을 이용한 과장된 연출로 웃긴다. 에피소드의 현실성은 높아지고, 웃음의 완성도는 더욱 커졌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한국 가족시트콤을 확립한 동시에 거기서 자신의 가능성이 묶였던 장르의 마스터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향에 한발 더 다가선 작품이다. 김병욱 감독은 드디어 가장 ‘가족적’이지만 ‘가족시트콤’은 아닌 그 무엇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이 거침없는 시도가 언제까지 계속되느냐는 것뿐이다. 심지어 직장의 조연들에게까지 캐릭터를 주었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초반 부진한 시청률과 함께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고, 주 5회, 회당 최소 두개의 에피소드를 쏟아내는 일일시트콤 형식은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을 다루는 데는 유용하지만 사람의 진을 뺀다. ‘선빵’은 거침없이 날렸다. 남은 건 이 KO승 없는 일일시트콤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구력이다.
“드라마에서 느끼는 박탈감, 시트콤으로 해소하고 싶다”
<거침없이 하이킥> 김병욱 감독 인터뷰
-<순풍산부인과>를 빼면 지금까지 해온 제목들이 점점 독해지고 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부터 <똑바로 살아라>와 <귀엽거나 미치거나>더니 이젠 ‘하이킥’이다. =아예 타이틀부터 영화 <싸움의 기술>처럼 만화와 실사가 섞인 분위기에서 출연자들이 하이킥이 아니면 로킥이라도 하게 만들었다. 원래 극중에 나오는 고교생 캐릭터가 크로캅을 좋아하기도 하고.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건 우리 마음의 반영이다. 작품 초반부터 탐색전없이 거침없이 하이킥한다는 그런 느낌. 항상 초반에 시동 거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 세게 나가니까. 그래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해보고 싶었다.
-왠지 다른 감독들과 달리 나이 들면서 더 독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웃음) 풍자 수위나 표현 같은 것들이…. 뭐랄까, 얌전한 관찰자에서 짓궂은 악동 같아졌다. =드라마 자체가 거대화되고 산업화되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있다. 옛날에 드라마가 순했을 때는 풍자 정신도 순했는데. 거대화, 산업화되면서 우리도 그만큼 더 비뚤어지는 것 같다. 정치·사회적인 바람을 넣는 것도 그런 것 때문 아닐까.
-그 비뚤어진 풍자는 어떤 방식으로 할 건가. 직접적인 정치 풍자를 할 것인가. =가족을 통한 사회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가족 내 권력구도에 관심이 많다. 가족 안의 역학관계를 통해 가족이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예를 들어 <순풍산부인과> 때는 오지명이 집안의 경제력이며 권력을 다 갖고 있었지만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아버지가 좀 맹한 부분이 있고 그러지 않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아예 며느리가 권력을 잡는다. 나문희 같은 시어머니는 능력이 없고, 박해미가 정준하와 결혼한 뒤 똑똑하게 살림을 잘해서 실권을 쥔다. 요즘 가족 중에 그런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권력구도도 달라지고. 그렇게 변해가는 가족의 권력구도를 통해 사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 작품이 나올수록 점점 더 풍자에 신경쓰는 것 같다. =시트콤이 설 자리가 없어서다. <LA 아리랑> 때는 캐릭터만 갖고 시트콤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의의를 가졌다. 그런데 그 뒤에는 시트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러면 시트콤이 드라마와 다른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 고민해야 한다. 드라마처럼 스케일을 크게 할 수도 없으니까. 단지 제작비가 싼 시트콤이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린 사회적인 약자니까 우리만의 정신이라도 있어야지. 비판이나 풍자가 없으면 시트콤은 존재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거침없이 하이킥>에는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넣고 있다. 기존 가족시트콤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위기의 주부들>처럼 실제로 누군가가 죽어서 어딘가에 묻혀 있고, 그 범인이 누군가에 대한 반전을 계속 보여줄 생각이다. 결론은 시청자에게 맡기고. 기존 형식을 탈피해야 하니까 여러 면에서 노력을 한다. 그러려면 매일매일 복선이나 단서도 흘려야 하고, 매회 시간 배열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게 좀 힘들다.
-‘김병욱표 시트콤’은 늘 시트콤과 전형적인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가 전혀 시트콤 같지 않은 요소가 뒤섞여 있었던 것 같다. =현재 대자본으로 흘러가는 드라마를 제어할 수 있는 장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판타지로 가득 찬 드라마를 보고 느끼는 박탈감을 어디서 해소할 건가. 그걸 시트콤이 해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냉소주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시트콤을 통해 신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곧바로 보여준다든가, 가족 이야기를 통해 사회 이야기를 확장해서 보여줄 수 있는 동시대성이 있다. 중심은 익숙한 시트콤에 두되 그렇게 드라마가 못하는 영역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