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심정을 그댄 아는가? 너무나 아프고 아픈 그 가슴에 칼을 꽂는 마조히스트의 심정을. 내가 그런 심정에 빠져 있을 때 날 구해준 것은 한명의 시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성복이다. 이성복 시인은 아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가 정녕 싫어지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느낄 만큼 그의 시어들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성탄절>이란 시를 읽고 난 가슴에 정확히 총알이 박히는 기분을 느꼈다.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우울이다.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늘이 있어도 없는 척 능청스럽게 살 수 있을까. 마음을 정리해도 끝까지 남는 것은 언제나 우울이다. 그럼 불안, 고독 등 인간이 가져야 할 당연한 감정들마저 죄의식처럼 느껴진다. 밤새 라디오를 들으며 행복하게 웃다가도, 방송 뒤에 찾아 듣는 음악은 엘리엇 스미스나 막시밀리언 해커의 곡들이다. 마치 우울을 향해 몸을 던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우울할 때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하면서도 끝내 혼자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언젠가 집을 잠시 떠나 사간동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문 적이 있었다. 외국인도 아니면서 외국인 전용 숙소에 갈 생각을 한 것은 그곳이 고시원보다 쌌기 때문이다. 그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있을 리 없었다. 내가 머문 한달간 손님은 단 한명이었다. 그는 잿빛과 푸른색이 묘하게 섞인 눈을 지닌 벨기에인이었다. 주인과 나, 그 벨기에인 셋은 밤새 술을 마시면서 드라마를 보거나 여행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밤을 샌 다음날 그 벨기에인은 훌쩍 강화도로 떠나더니 이틀 만에 돌아왔다. 러시아로 가기 위한 비자를 기다리면서 서울 근교를 여행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새를 좋아한다던 그 이방인은 망원경을 하나 사 들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난 종종 키가 훌쩍 큰 이방인이 황량한 개펄 위에 서서 날아가는 새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 외로운 뒷모습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이방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닮고 싶다.
서울에서 지인들과 늘 얼굴을 마주하며 살면서도 난 늘 내가 이방인이란 생각에 젖어 있다. 이 땅은 내 고향이 아니고 내가 쓰는 한국어도 잠시 빌려 쓴 언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종종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쓰는 가상의 친구 세명의 입을 빌려 혼잣말을 한다. 하와유두잉, 잘 지내, 넌 어때? 겡키!라는 식이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이미 날 객관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내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몽상만이 날 우울에서 구제해준다.
하지만 몽상만으로 도저히 삶을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래서 난 언제든 우울할 때마다 읽으면 좋을 목록을 만들었다. 이름하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흐린 날의 빗소리, 목구멍이 탈 정도로 진한 초콜릿, 한밤의 맥주, 오묘한 색깔의 밤 하늘빛, 그 밤하늘에 어린아이의 눈처럼 예쁘게 박힌 별들, 이성복의 시집, 젊은 남자의 예쁜 손, 카페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보고 있을 때의 그 촉촉한 시간들, 따스한 양송이 수프, 방명록의 새 글, 뒤에서 누군가 날 안아주는 느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 어린아이의 찹쌀떡 같은 뺨, 고독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하늘, 고독한 사람들을 직접 위로하기 위해 땅으로 살며시 내려앉은 안개, 보고 싶은 영화가 막 시작되기 직전의 순간, 중학생들의 웃음소리, 복잡한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한장의 그림, 키스하는 모습, 어머니가 귀가한 날 반기는 모습,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이런 것들이 날 위로한다. 이왕 이방인으로 태어난 거라면 이방인처럼 살다가 이방인답게 죽고 싶다. 그런 삶이 또 다른 내 이방인 친구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사실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