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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죽음 직전의 순간으로, <라스트 데이즈>

EBS 12월2일(토) 밤 11시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이런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난감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더 없이 마음을 울리고 그 감동을 적절히 조절하며 표현하기에 지면은 너무 작고, 게다가 이미 수차례 좋은 글들이 쏟아진 상황에서 그 영화를 다시 쓰는 것. 내키지 않은 일이다. 이런 영화를 그저 ‘소개’하는 것처럼 따분한 일도 없지만, 그럴 수밖에 없음에 대해 약간의 양해를 구한다.

<라스트 데이즈>는 <게리> <엘리펀트>에 이은 구스 반 산트의 죽음의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게리>가 사막을 가로지르려던 두 남자의 비극적인 실화를 다루었고 <엘리펀트>가 컬럼바인고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었던 것처럼 <라스트 데이즈> 역시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시대의 반영웅, 차라리 시대의 비극, 시대의 슬픔이었던 커트 코베인이다. 1994년 4월5일, 27살의 나이로 숨진 커트 코베인에 대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는 외로운 청년이었고 코트니 러브와 결혼했고 세계적인 아이콘이었고 약물 중독이었고 자살했고 혹은 타살되었고…. 그러나 구스 반 산트는 커트 코베인의 실제 삶을 다루거나 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의 진위를 밝히는 데 관심이 없다. 심지어 이 영화에는 너바나의 음악이 단 한곡도 삽입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영화는 음모론도 아니고, 그의 음악도 아닌, 그가 맞이한 어떤 순간을 따라가고 있다.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을 뒤섞고 반복하며, 끊임없이 영화 속 공간 안과 밖에서 흐르는 소리를 중첩시키며 ‘그’의 시간, 아니, 그를 통과한 어떤 시간을 재구성한다. 그것은 한편의 영화 안에서 삶을 되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시간 혹은 죽음 직전의 순간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불편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다. 그의 이름은 커트 코베인이 아니라 블레이크다.

<라스트 데이즈>에는 구스 반 산트와 죽음의 삼부작을 함께했던 프로듀서 대니 울프, 촬영감독 해리스 사비데스가 여전히 완벽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마이클 피트는 커트 코베인의 거의 완벽한 재림이다. 모순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라스트 데이즈>는 보이는데 보이지 않고 들리는데 들리지 않음(혹은 그 반대의 경우)을 형상화해낸, 커트 코베인보다 더 커트 코베인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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