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재킷’(metal jacket) 혹 ‘재킷’(jacket)에는 ‘총탄의 금속 외피’라는 뜻이 있다. 설용근씨의 특수의상·소품 업체 ‘메탈자켓’도 거기에서 연유된 상호명이다. 사무실과 창고가 수원역 인근에 위치한 메탈자켓의 취급 물품은 경찰 및 군 관련 제복을 비롯한 각종 유니폼과 총기 관련 소품들. 200여벌의 경찰복 및 S.W.A.T 복장, 계급에 따른 군복뿐 아니라 환경미화원 복장까지도 상·하의에 벨트, 모자, 신발, 소지품을 세트로 구비해놓고 있다. 지하창고 구석에는 의사 가운과 간호사 신발, 최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쓰인 간수복도 한 아름 쌓여 있고, 총기류는 콜트에서부터 M-60에 이르는 모형 총기를 주요 배역용(정밀한 모형 제품)과 보조출연자용(거의 껍데기만 있는, 몹신을 위한 저가 모형)으로 나눠놓았다. 차를 타고 5분여를 가면 두곳의 차고지가 있다. 대형차량과 소형차량으로 분류해놓고 순찰차 15대, 형사 기동대 봉고차 4대, 특공대 버스 2대, 군용지프, 전경버스 등 특수 차량을 보관, 관리한다.
현장에선 주로 ‘설 팀장’이라고 불리는 설용근씨는 지금의 일을 하기 전까지 비슷하면서도 다른 직종에 있었다. 프라모델과 관련한 기자 일을 거쳐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쪽 일을 하던 중이었다. 이쪽 인력을 <퇴마록>(1998)의 경찰특공대원 역의 보조출연자로 섭외 진행하는 와중에 특수효과 전문업체 ‘데몰리션’의 정도안 대표와 소품팀과의 연이 닿았다. “<쉬리>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라면서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퇴마록>을 작업하면서 일에 매력을 느껴 승낙하게 됐다.”
설 팀장의 일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대한 진짜에 가까운 가짜를 취급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많이 겪었다. “현장에 경찰차를 세워뒀는데 하도 오래 서 있으니까 주민이 경찰서에 신고한 적도 있다. 직무 태만이라고.” <태풍> 때 타이 촬영을 마치고 귀국하는데 방콕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소지품 검사대에서 X레이를 찍고 바로 붙들렸다. 허가서를 보여주니까 확인이 안 된다 어쩐다 하면서 출국할 수 없다고 하더라.” 현지 경찰들이 공항에 출동했다. 설 팀장 일행은 2시간을 꼼짝없이 공항에 있어야 했다. 가장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 중 하나는 <공동경비구역 JSA>다. JSA 부대 출신에게 고증을 받기 위해 지인을 통해 사람을 만나 자료를 직접 보고 ‘위장 전술’로 JSA를 들어갔다 오기도 했다. “부대에 옷 납품하는 직원으로 들어갔었다. (웃음) 사진을 찍을 순 없으니까 눈으로 보고 외우고 와서 (당시에는 인터넷이 아닌) 통신에 들어가 이러이러한 장비가 있는데 구할 수 있느냐고 수소문했다.” 촬영하기 전날까지도 소품이고 의상을 만들어서 가져가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의 정보망을 적극 활용할 줄 아는 설 팀장은 당시에는 배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청계천 일대를 다 뒤져야 했다고 덧붙인다.
사무실과 창고 인근에 공군 비행장이 있어서 수십분에 한번씩 비행기 소음이 들렸다. “나는 죽 수원에 살아서 괜찮은데 그런 사람 아니면 다들 힘들어한다”고 하는 그는 어릴 때부터 총을 갖고 노는 일을 좋아했다고 한다. “솔직한 얘기로, 영화가 흥행했을 때가 가장 보람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한국영화에서 지축을 흔들었던 영화를 했다는 것 하나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의 꿈은 특수의상 및 소품쪽의 영역을 좀더 전문화하고 확대하는 것. <스타워즈>의 제국군 의상이나 <스파이더맨>의 라텍스 복장을 예로 들었다. “할리우드에는 있지만 한국 영화계에는 없는 부분에 도전해보고 싶다.” 7명의 인력을 데리고 매번 일목요연하게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도 작지만 큰 일. “지하창고에서 나오는 것도 급선무고 시대별, 종류별로 물품을 정리하고 완벽히 구비하고 싶기도 하다”는 희망사항 역시 빼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