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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어디라도, 여기가 아니라면
이다혜 2006-11-24

이부자리에서 몸을 빼기 전에 천장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가을은 온데간데없이 다짜고짜 겨울이니, 출근준비를 하기 위해 이불을 들추는 일이 이렇게 고될 수가 없다. 목도리와 아주 얇지 않은 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서면 코가 싸하게 식는 느낌이 든다. 내가 개였다면 젖은 코는 진작에 얼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옷깃을 여미고, 필요 이상으로 어깨를 웅크리면, 지나친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통증이 목 뒤부터 시작해 척추를 압박한다. 차가운 바람을 타고 낙엽이 얼굴을 냅다 몇대 친다. 정신이 들기는커녕 더욱 몽롱해진다. 여기는 어디더라, 갑자기 눈앞의 장소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곳이 아닌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몇 년째다. 날이 싸해지는 11월이면 언제나 집을 나서면서 외국의 어느 낯선 도시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외국에 나가는 일이 주로 이 계절의 행사였기 때문이다. 성수기인 여름이 지나고 부산영화제도 끝나고서야 여름 휴가를 쓰곤 했기 때문에 늘 휴가는 가을에 갔었고, 어쩐 일인지 해외 출장도 봄이나 가을에 주로 갔다.

외국에 가면 언제나 걸었다. 돈도 시간도 넉넉하지 않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주린 배를 해서는 낯선 골목들을 누비고 다녔다. 서울에서는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 혹은 집 혹은 어딘가에 들어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만, 외국에 가 있을 때만큼은 가난한 지갑과 함께 두발로 걸어다녔다. 한국에서보다 외국에서, 싸늘한 공기를 더 많이 맞았던 거다. 싸늘한 공기와 이국의 느낌은, 결국 몸의 기억이었던 셈이다. 결국 몸이 시키는 대로라면 지금 나는 서울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디라도, 여기가 아니라면. 일단 머리가 그리 굴러가기 시작하니까 뭘 봐도, 뭘 들어도 “어디라도, 여기가 아니라면”의 주문 같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삽입곡으로 쓰인 구루리의 <하이웨이>는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거의 100개 정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여기서는 아무래도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끄덕끄덕. 숨이 막힌다잖아, 응? 아침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천장을 보고 중얼중얼. 하루에 열번씩 통장 잔고를 확인해보지만 잔고는 언제나 부족하다. 통장 잔고 확인 횟수로 돈이 불어난다면 나는 지금쯤 억만장자가 됐을는지도 모르는데, 중얼중얼. 아, 그러고 보니 돈은 없지만 할 일은 많지. 한숨. 계속 도돌이표식의 고민을 반복하다 잠이 드니 꿈속에서 이근화의 시가 나를 부른다. ‘먼 나라에서 에리카가 편지를 쓸 때’.

“날마다 다른 도시로 가서 빵과 맥주를 샀지 하루종일 걷고 아침 저녁으로 달렸어 귀찮고 나른한 여행이었어”라는 시구를 혼자 랩하듯 읊으며 여행을 하는 꿈이다. 미로 같은 골목 안에서 길을 잃고, 이상한 나라에서 온 깊고 푸른 글자들 속에서 춤을 추고, 낯선 도시에서 구운 빵과 신맛의 맥주를 먹고, 내가 해독할 수 없는 글자와 어려운 그림을 포함한 편지를 읽는다. 혼자 정처없이 걷다 지쳤는지, 다리에 쥐가 나 잠에서 깬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코가 차갑다. 낯선 골목의 시작도 끝도, 결국 내 방이다. 어쩐지 지긋지긋하도록 안온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