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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영화 <허공에의 질주>
2001-09-20

이제는 없는 친구를 추억하며

Running on Empty 1988년, 감독 시드니 루멧 출연 리버 피닉스 <HBO> 9월20일(목) 오후 6시20분

조금 어렸을 적에 본 영화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첫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허공에의 질주>다. 검은 배경에 흰색 선들이 틈틈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영롱하게 메아리친다. 카메라가 조금 더 넓게 풍경을 잡으면 장면이 좀더 명확하게 보인다. 카메라는 끝없이 길게 늘어선 도로를 포착하고 있는 거다. 오래 전에 지은 정치적인 범죄 탓에 떠돌면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와 그들의 자식들, <허공에의 질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나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이미 고인이 된 청춘스타 리버 피닉스의 앳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며 그의 실제 피아노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음악은 내 인생이야”라는 리버 피닉스의 대사 한마디는 청춘의 오만함과 꿈을 너무나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보는 이의 넋을 사로잡는다.

FBI에 쫓기면서 15년간 도피생활을 해온 아더와 애니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힘든 생활을 한다. 아들인 대니는 부모와 함께 6개월마다 이름과 머리색깔을 바꾸면서 살 수밖에 없다. 새로운 마을에 정착한 대니는 음악교사에게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고 필립스 선생의 딸인 로나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대학에 입학시험을 보러간 대니는 재능을 인정받지만 여러 가지 정황 탓에 입학이 어렵다. 아더와 애니 부부는 이제까지의 생활을 계속 유지하면서 아들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한다. 결국 부부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잠시 동안 그에게 자신만의 인생을 주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허공에의 질주>는 <네트워크>과 <개같은 날의 오후> 등을 만든 시드니 루멧 감독작이다. 사회파 감독으로서 미국의 사회문제와 개인의 갈등, 그리고 연극의 영화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활동을 해온 시드니 루멧 감독은 영화에서 가족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런데 여느 할리우드 가족영화와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허공에의 질주>는 단순하게 따스한 가족애를 강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달리하는 가족들 내부의 갈등을 극히 유려한 드라마로 꾸며내고 있다.

<허공에의 질주>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멜로드라마의 관습에 의존하면서도 개성이 담겨 있는 배우들의 연기, 어느 시골마을의 고적한 모습 등 극히 미국적인 풍경을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담아낸 이색작이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를 1988년 당시,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편으로 선정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