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 Excalibur 1981년,
감독 존 부어맨
출연 나이젤 테리, 헬렌 미렌
OCN 2월8일(목) 밤 10시
존 부어맨은 영화감독이 되기 전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작 그의 영화들은 그 자신의 이런 예전 경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엑소시스트2>(1977), <에머랄드 포리스트>(1985)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부어맨의 영화들 가운데 다수는 사실적인 것보다는 신화적이고 불가사의하며 마술적인 것에 더 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엑스칼리버>는 부어맨의 이런 작품 성향을 잘 보여주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한 것이다. 아더왕의 전설을 다룬 이 영화는 마법과 신비한 기운이 넘쳐나는, 신화와 악몽 사이의 세계로 들어간다.
때는 혼란한 암흑의 시대. 마법사 멀린으로부터 ‘권력의 검’이자 ‘왕의 검’인 엑스칼리버를 얻은 우터는 적을 무릎 꿇리고 통일된 국가의 왕이 되기에 이른다. 적장의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는 욕망을 이기지 못한 우터. 그는 결국 멀린의 힘을 빌려 욕망을 충족시키고 그럼으로써 아들을 보게 되지만 그 자신은 그만 얼마 못 가 최후를 맞고 만다. 다시 혼란스런 여러 해가 지난 뒤 엑스칼리버는 우터의 아들인 아더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삭이기 힘든 욕망 때문에 태어난 아더가 왕이 되고 결국엔 자신의 아들로부터 운명적인 최후를 마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에픽 <엑스칼리버>는 무엇보다도 의상과 세트, 특수효과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다. 그것들로부터 조성된, 때로는 야만적이고 때로는 마술적인 분위기는 꽤 매혹적인 주술적 힘마저 갖는 듯하다. 하지만 이토록 근사한 비주얼에 비해 캐릭터 묘사는 밋밋한 편이다. 그래서 “선과 악은 함께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법사 멀린의 말은 영화 속에서 별로 깊은 울림을 갖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