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노회한 극장의 최후를 바라본다. 현실에서도 <안녕, 용문객잔>처럼 거대한 단관은 자취를 감췄고 멀티플렉스가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변하지 않은 건 영화에서 서로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 다리가 불편한 여자매표원과 영사기사처럼 여전히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백몇십명의 스탭이 1만명의 손님을 상대하는 멀티플렉스의 하루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관객은 스쳐가도 극장은 잠들지 않는다. 매점에서 땀범벅이 되고, 플로어에서 목이 뻐근하도록 인사를 해도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는 젊은 스탭들의 일상과 그들이 생각하는 멀티플렉스를 들여다보면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토토, 네가 영사실 일을 사랑했던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네 일을 사랑하렴.”
오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쉴틈없는 멀티플렉스의 하루
“우리는 쉬지만 멀티플렉스는 잠들지 않는다”고 스탭들은 이야기한다. 하루 평균 관람객 1만명, 상영시간 20시간, 일하는 스탭만도 120∼150명. 옛 극장이 여가를 위한 ‘특별’한 장소였다면, 현재의 멀티플렉스는 편의점이나 버스정류장 같은 ‘일상’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팝콘을 즐기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는 어떠할까. 문을 열고 보안을 맡거나, 팝콘을 튀기고, 티켓을 건네며, 프린트를 영사기에 물리고, 관람객을 인도하고, 상영이 끝나면 청소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통해 멀티플렉스의 ‘낮과 밤’을 살펴봤다.
06:00 오픈 <매트릭스> 요원처럼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어둠이 가시지 않은 멀티플렉스의 정문 앞에 우뚝 선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을 열고 유리문을 고정시키는 남자. CGV상암의 보안을 담당하는 한국안전기획 보안1과 김기선 팀장이다. 순환근무를 통해 상암 외에도 다른 CGV의 보안을 맡고 있는 김 팀장은 “서비스가 이뤄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말투나 언행을 교육할 때도 그런 요소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정문은 CGV 보안팀이 전담하고 후문은 대형마트의 보안팀과 공동으로 관리한다. CGV상암은 주변에 공원이 자리한 관계로 “노숙자나 취객의 방문이 종종 있기 때문에 출입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한다. 보안요원은 출입관리뿐 아니라 고객과 스탭들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벌어질 때도 마지막 안전장치로 작용한다. 과거 디지털카메라를 분실한 한 관객이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으며 여자 스탭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 다른 스탭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뛰던 그는 결국 보안요원의 따뜻한 손길에 의해 경찰서로 향했다. 오늘 멀티플렉스에 먼저 등장한 주인공은 스탭이 아니라 MBC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촬영팀. CGV상암은 <파리의 연인>에서 여주인공의 근무처로 노출된 이후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공간으로 섭외가 자주 들어온다. 개장 전이지만 조명을 비롯한 제반환경은 관람객이 있을 때와 동일하므로 촬영에는 무리가 없다. 슈퍼바이저와 매니저는 촬영에 협조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상영관의 상황을 점검한다.
08:00 조회 유니폼 차림의 스탭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매점 옆 조회실의 문이 열리고 근무카드에 스탭들이 출근을 기록한다. 다음은 슈퍼바이저와 스탭들이 마주 서서 업무의 시작에 해당하는 ‘조회’를 진행한다. 스탭들과 인사를 건넨 신기묘 슈퍼바이저는 출석을 부른다. 지각자 발생. “왜 지각인가요?”라는 슈퍼바이저의 질문에 한 남자 스탭이 “감기 걸렸다는데요”라고 대답한다. 멀티플렉스 스탭들의 근무 태도에 대한 기준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엄격하다. 지각은 벌점 5점, 벌점 20점이 넘어가면 퇴사. 무단결근 2회도 역시 퇴사. 출석 체크가 끝나면 공지 사항을 전달한다. “<마음이…>의 스탭 가족 시사회가 있으니까 다른 스탭들에게도 알려주시고 많이 참석해주세요. 11월3일에는 가수 The name의 무대인사가 있고요”라는 말과 함께, 스탭들 사이에 가수에 대한 얘기들이 잠시 오간다. “12월31일까지 국민은행 체크카드 할인 사항, 마일리지 문제. VIP 포인트, 프레스코와 웹하드 이용권” 등에 관한 언급이 이어지고 공지는 막을 내렸다. 다음 순서는 용모 검사. 손톱 상태, 복장, 화장, 머리 모양을 중심으로 바이저의 눈길이 스탭들을 향한다. 여자 스탭은 이마가 드러나도록 깔끔하게 머리를 묶는 것과 빨간 립스틱이 필수. 남자 스탭은 깨끗한 손톱 상태와 검은 양말이 기본. 용모 검사가 끝나면 스탭 중 오늘의 ‘깔끔이’를 선발한다. 일찍 출근했고 용모가 단정한 스탭이 뽑히고 극장에서 사용 가능한 마일리지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조회 이후에는 각자의 포지션을 결정한다. CGV상암은 매표소, 서비스 데스크, 매점, 상영관의 네 포지션을 순환근무로 결정하며, 아침마다 각자가 원하는 포지션을 슈퍼바이저가 조절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CGV용산은 스탭들이 고정 포지션으로 근무한다.
10:00 각자 위치로 첫 상영이 이미 시작됐고 매표소의 발권시스템 세팅을 비롯해 매점에는 음식물 세팅과 모든 준비가 마무리된 시간. 입구부터 상영관까지 전부 1층으로 지어진 CGV상암은 장애우 고객들이 유난히 자주 찾는 곳이다. 입구에서 피노키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정만훈 소장 일행을 만났다. “오늘은 하늘공원에 소풍을 가느라 영화는 보지 않지만 CGV상암의 단골”이라고 그는 말했다. 동행한 이승연씨는 “여기가 지하철역에서 오기도 쉽고 다른 극장보다 출입이 용이하다. 수직 리프트를 이용해서 상영관에 들어가는 과정도 편리하다”고 이곳을 찾는 배경을 설명했다. 이씨는 “<사랑따윈 필요없어>를 보러 11월에 극장에 올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윤수형 스탭은 “장애우분들은 항상 오시는 분들이 오는 것 같다. 얼굴을 알고 지내는 스탭도 많다”고 설명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스탭들은 각자 휴식시간을 갖는다. 최대 30분까지 가능한 휴식 시간에 그들은 휴게실에서 간식을 먹으며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TV를 시청한다. 스탭들이라고 매점 음식을 공짜로 먹는 건 아니다. 스탭 마일리지 카드를 통해 핫도그와 콜라 세트를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하는 혜택이 있기는 하다. 방금 전까지 상영관 입구에서 표를 받으며 “즐거운 시간 되세요”라는 멘트를 수백번 반복하던 김도환 스탭이 1700원에 구입한 핫도그와 콜라를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12:00 교대시간 정오가 지나면 중간 타임 스탭의 첫 번째 교대가 이루어진다. 스탭들은 평균 6시간, 3교대로 근무한다. 영화과 2학년인 CGV상암 박영균 스탭은 “손님들이 몰려드는 상황에는 2~4시간 연장해서 교대 스탭과 함께 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매표와 매점에서 근무한 스탭은 까만색 핸드백 모양의 예입대를 지참하고 조회실에서 그날 매출을 기록한 종이와 예입대를 건넨다. 사무실과 조회실을 연결하는 창구에 앉은 회계 담당 직원은 스탭이 제출한 기록지를 전산으로 기록하고 예입대를 수령한다. 아침에 개점하며 손님들에게 잔돈을 거슬러주기 위해 지참하는 예입금(준비금) 금액은 매표는 20만원, 매점은 10만원이다. 고객의 신용카드 거래는 바로 전산 처리되지만 현금 거래는 이 과정으로 사무실에 입금된다. 예입금 전달이 끝나면 근무카드를 기록하고 휴게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귀가한다. 출석과 용모 검사만큼 엄격한 것이 스탭의 근무환경이다. 여섯 시간 내내 서 있고, 특히 여자 스탭의 유니폼은 디자인 자체가 오래 앉기 불편한 복장이다. 종영 뒤 청소하면서 스탭끼리 이야기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잡담도 거의 불가능하다. 여덟 시간을 근무하며 현장과 사무실을 쉴새없이 오가는 슈퍼바이저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CGV상암 김정연 슈퍼바이저는 “현장 플로어의 상황를 주시하고 스탭들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사무실에서 서류 업무와 전산으로 수집된 고객의 불만사항을 처리해야 한다. 영화시간표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14:00 기자·배급 시사회 보통 2시에 시작하는 기자·배급 시사회가 열리면 CGV의 ‘메인’ 격인 CGV용산 스탭들의 발놀림이 분주해진다. 보통 일주일에 한두 차례 기자·배급 시사회가 열리는 CGV용산은 이 시간이면 관계자 접대와 배우를 비롯한 VIP 의전에 스탭이 집중적으로 배치된다. CGV용산 이정석 매니저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배우를 눈앞에 두고도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같은 사무적인 어투로만 말해야 하는 상황이 직업적 기쁨이자 슬픔”이라고 말했다. 시사와 기자회견이 계속되는 바쁜 일정 가운데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배우들이 많기 때문에 편의를 제공하는 일도 극장 스탭들에게 주어진다. 이 매니저는 “특별한 편의를 제공하기 요구하기보다는 일반 관객과 똑같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다수의 남자배우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여자배우는 일반 관객이 이용하는 화장실보다는 영사실에 딸려 있거나 별도의 독립된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돕는 경우가 많다. <열혈남아> 시사회가 열린 당일에도 상영 뒤 관계자들이 상영관 맞은편의 골드클래스 라운지로 몰렸다. 라운지의 양쪽 끝은 설경구, 나문희, 조한선을 인터뷰하는 기자들로 북적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골드클래스를 이용하는 소수의 일반 관객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조치하고 서비스하는 일은 스탭들의 몫이다.
16:00 영사실 사람들 영화 상영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사실 안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3관 예고편 끝나고 본 상영 들어갑니다.” 무전기를 든 스탭들이 상영관을 향해 난 자그마한 ‘감시창’을 통해 상영 상태를 꼼꼼히 점검한다. 10여대 안팎의 영사 기계가 쉴새없이 돌아가는 이곳을 관장하는 것은 실장, 영사기사, 스탭 등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영사실 식구들. 영사기가 자동화되어 러닝타임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극장 내 조명의 점등과 소등까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만, 영사실의 업무는 과거에 비해 결코 수월하지 않다. 17년 영사기사 생활을 거쳐 지금 실장을 맡고 있는 CGV상암의 김기태씨는 “과거에 비해 손님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동호회에서 상영에 대해 평가하는 등 관람 기준이 높아져 늘 긴장이 된다”며 “디지털 상영의 경우 아직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태라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영사실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실수를 잡아내야 하는 것은 각각의 상영관을 담당하는 스탭들. 해당 영화의 앞부분 5분 정도를 지켜보며 화면과 사운드 상태를 체크하고, 영화가 끝나기 5분 전에 미리 상영관에 들어가 관객의 퇴관을 준비해야 한다. 메가박스 신촌점의 이은경 스탭은 “같은 영화의 처음과 끝부분을 반복해서 보기 때문에 대사와 동작을 모조리 암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요새는 <타짜>의 결말 부분을 외워서 우리끼리 연기하면서 장난을 친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시계 바늘이 오후 5시를 넘어서면, 마지막 교대조에 속해 있는 스탭들이 차례로 출근하기 시작한다. “바이저님, 정산이요~!” 출근자들이 하나둘 각자의 위치로 파견되는 사이, 퇴근을 앞둔 스탭들은 하루 수입을 정산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가는 이들과 들어오는 이들이 교차하는 사무실은 순식간에 북새통을 이룬다.
18:00 피크타임 “다음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 매표소 앞에 줄이은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스탭들의 목소리도 자연스레 커진다. 관객이 몰리는 저녁은 모든 파트의 스탭들에게 가장 고달픈 시간대다. 특히 매표를 담당하는 스탭들은 신용카드 할인 여부를 놓고 손님과 승강이를 벌이는 일이 잦다. 할인 혜택에 해당되지 않는 카드를 들고 끝까지 할인해줄 것을 우기는 경우도 문제지만, “볼 만한 영화 한편만 추천해달라”며 조언을 구하는 경우는 더욱 난감하다. 스탭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이른바 ‘스탭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을 하다보면 뒤에 선 손님들이 시간을 끈다며 불평하고, 서두를 경우에는 해당 손님에게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는다. 어떤 식으로 행동해도 결국 욕을 먹게 되는 셈이다.” 식은땀을 흘리기는 매점의 스탭들도 마찬가지다. 주말 저녁은 한번에 수백명의 손님이 몰리는 것도 다반사. 대여섯명의 스탭이 이를 악물고 살인적인 주문량을 소화해야 한다. 매점과 플로어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수표를 담당한 스탭들은 외부 음식물 반입 여부를 놓고 관객과 입씨름을 벌인다. 특히 최근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뒤 피자, 닭고기 등 포장한 음식을 들고 입장하려는 관객이 부쩍 늘었다. 메가박스 코엑스점 이기재 슈퍼바이저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냄새 때문에 반입이 안 되는 것”이라며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몰래 감춘 채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사전에 이러한 음식물을 적발하지 못할 경우 나중에 “극장에서 냄새가 난다”며 관객에게 항의를 받는 것은 물론, 스탭들이다.
20:00 배우 무대인사 “6관 나오세요. 감독, 배우들 지금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상영관 앞에 선 스탭에게 무전이 전달된다. <마음이…>의 무대인사가 진행되는 메가박스 신촌점의 공기는 배우와의 만남을 앞두고 들떠 있는 관객으로 인해 한껏 고조된 상태다. 하지만 해당 상영관을 담당하는 스탭들과 슈퍼바이저에게 무대인사는 업무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이벤트다. 입장과 퇴장의 타이밍은 물론, 마이크와 조명 상태 중 하나라도 어긋나는 경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 스탭은 보통 첫 번째 예고편이 상영된 뒤에 사무실에 무전을 보내고, 이때를 기점으로 감독과 배우들은 해당 상영관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두 번째 예고편이 상영된 뒤에는 사운드와 조명 스탠바이를 위해 영사실에 무전이 들어간다. 사무실에서 상영관으로 이동하기까지의 동선을 조정하는 것은 슈퍼바이저의 몫. 일반인이 있는 곳으로는 걸어갈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는 매니저들과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관계자들이 입장을 마친 뒤에는 상영관을 봉쇄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상영관 입구에서 “무대인사만 잠깐 보고 나오겠다”며 억지를 부리는 관객을 설득해 돌려보내는 가운데, 안에서 무대인사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자 스탭들은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김향기 진짜 인형 같지 않니?” “유승호, 정말 귀엽게 컸더라~.” 다른 상영관에 배치된 스탭들도 합류해 잠시나마 도란도란 잡담꽃을 피운다.
22:00 서비스 데스크 입장하는 관객보다 퇴장하는 관객 수가 많아지는 심야가 되면,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것은 서비스 데스크다. 차를 가져온 관객이 주차 요금에 대해 문의해오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주차장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건물에 극장이 입주해 있는 경우 주차 요금 할인 혜택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관객의 항의도 늘어난다. “영화를 봤는데 왜 주차가 무료가 아니냐며 화를 내는 손님들이 정말 많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다른 극장 이름을 언급하며 ‘거기는 이렇지 않았는데 여기는 왜 이따위냐’며 언성을 높이면 정말 속상하다.” 서비스 데스크에서 1년 정도 일해온 메가박스 코엑스점 김미리 스탭은 “서비스 데스크는 특히 젊은 여자 스탭 위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며 “너무 당황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스탭들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서비스 데스크가 손님 응대에 분주한 가운데, 다른 파트의 스탭들은 관객 수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숨을 돌리는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긴장이 풀어지기 때문인지 의도치 않은 실수들이 터져나오는 것도 바로 이때다. 특히 수표를 담당하는 스탭의 경우 입장을 안내하다가 “멘트가 꼬여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캐리비안 베이>로, <마이애미 바이스>를 <마이애미 바이러스>로 잘못 안내한 에피소드는 메가박스 신촌점 스탭들 사이에선 종종 회자되곤 하는 일화다. 밤이 깊어지면서, 연인들의 낯뜨거운 모습이 늘어나는 것도 스탭들을 민망하게 하는 것 중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극장 뒷좌석에 앉아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경우엔 영사실 식구들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24:00 마감 준비 시계 바늘이 자정을 넘어서면, 마감을 준비하는 작업이 파트별로 조금씩 진행된다. 매표소 스탭들은 마지막 회차의 상영이 시작되고 20여분이 지난 뒤부터 정산을 시작한다. “아, 오늘은 왠지 돈이 모자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난 500원이 남았어?!” 정산실에 삼삼오오 모여 돈을 헤아리는 스탭들은 입력된 금액보다 실제 액수가 모자라지는 않을까 마음을 태우면서도, 일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 즐거운 듯 농담을 주고받는다. 상영관 스탭의 경우 모든 상영이 종료된 곳부터 먼저 청소를 시작한다. 영화 포스터를 교체하고 배너와 전단지, 상영시간표 등을 점검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모든 파트 중 가장 고된 마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은 매점 스탭들. 팝콘 기계와 소다 타워, 핫도그 그릴 등 모든 기기들을 해체한 다음 일일이 세척과 소독을 해야 하기에, 청소하는 시간만 1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마감이 모두 마무리되는 시각은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마감조에 속한 스탭들에게는 교통비가 지급되지만, 대부분의 스탭들은 첫차가 다닐 때까지 한데 어울려 뒤풀이를 한다. 메가박스 코엑스점 이기재 슈퍼바이저는 “교통비를 모아서 야식비나 술값으로 쓴다”며 “사적으로 어울리는 자리가 많다보니 서로 친해져서 형, 동생하며 지낸다”고 말한다. 스탭들이 뒤풀이 장소로 총총히 걸음을 옮기면, 극장은 화려했던 조명을 하나둘 꺼고 어둠에 잠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짧은 휴식이다. 불과 서너 시간 뒤면 극장은 불을 밝힐 것이고, 관객은 플로어를 가득 채울 것이며, 그렇게 숨가쁜 하루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멀티플렉스. 그 거대한 꿈의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수많은 스탭들의 고되고, 즐겁고, 아프고, 치열한 시간들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극장은 잠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