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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 뮤지컬은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았나
김현정 2006-11-17

디즈니, 스펙터클한 쇼로 부활하다!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어떤 뮤지컬을 보면 괜찮은지 묻곤 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처럼 안전한 뮤지컬을 추천받았지만, 몇년 전부터 런던과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뮤지컬 <라이온킹>이 그 리스트에 첨가되었다. 디즈니가 제작한데다가 배우들이 진짜로 동물 가면을 뒤집어쓰고 연기한다기에 좀처럼 정이 가지 않았던 뮤지컬. 그러나 공연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은 무대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공연의 한계를 뛰어넘는 뮤지컬들을 만들어왔다. 제작비를 상상하고 싶지 않은 엄청난 무대장치와 의상, 이미 귀에 익었기에 안심할 수 있는 음악, 스무자로 요약할 수 있어 원하는 부분에만 정신을 집중해도 괜찮은 단순한 스토리.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 <노틀담의 꼽추> <라이온킹> <아이다> 등으로 드라마가 있는 극이라기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역량을 쏟아부은 쇼에 가까운, 어찌보면 복고적인 뮤지컬의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

브로드웨이 여섯 번째 장기공연한 뮤지컬 <미녀와 야수>

미키 마우스와 백설공주에 기대어 시작된 디즈니는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가 죽은 다음 오랫동안 애니메이션 사업에서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1984년부터 잊고 있던 금광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 디즈니는 1989년 <인어공주>부터 황금기에 다가가기 시작했지만, 4년 뒤에 제작된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를 이어받은 이들에게 새로운 광맥을 던져주었다. 그 무렵 디즈니에 재직하고 있던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이 ‘<미녀와 야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에 디즈니가 브로드웨이로 나갈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는 모두 뮤지컬애니메이션이었고, <Under the Sea> <Belle> <Be Our Guest>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도 흥얼거리게 되는, 따라부르기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마침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일하고 있던, 이후 사장과 부사장이 되는 피터 슈나이더와 토머스 슈마허는 여러 가지 형태로 공연사업을 경험해온 이들이었다. 독재자에 가까운 경영 스타일을 구사했지만 그만큼 결단력도 있었던 아이즈너는 1994년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을 설립해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제작했고, “전부 당신 마음대로 하든지, 통째로 우리에게 주든지, 택하라”던 슈나이더와 슈마허에게 사업을 온전히 맡겼다.

뮤지컬로 제작된 <미녀와 야수>

브로드웨이에서 여섯 번째로 장기공연한 뮤지컬이 되었던 <미녀와 야수>는 그런 인기에 못지않게 혹평도 만만치 않았다. <미녀와 야수> <알라딘>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했던 앨런 메켄이 그대로 뮤지컬의 음악을 맡았지만, 그가 뮤지컬만을 위해 작곡한 노래 <Home> <If I Can’t Love Her>는 그저 그렇다는 평을 들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제법 귀여웠던 악당 개스통도 뮤지컬에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고 웃기지도 않는 슬랩스틱 코미디언의 역을 떠맡아야만 했다. 그러나 <미녀와 야수>의 정수는 아름다운 처녀 벨과 못된 성질 때문에 마법에 걸린 야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통째로 들어내도 극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저녁 식사 장면에 있었다. 찻주전자 아주머니와 촛대 아저씨와 접시 아가씨들이 화려한 보드빌 쇼를 펼치는 <Be Our Guest>가 그것이었다. 한국에서는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던 <미녀와 야수>는 깊이감있는 무대를 가득 채우며, 마릴린 먼로가 핑크색 드레스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하던 미국 뮤지컬영화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공연이라 할 만한 만찬을 선보였다. 접시와 포크와 주전자 같은 가재도구가 로코코풍의 섬세한 드레스로 재현되었던 <Be Our Guest>는 노래와 춤과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결합되기에 무대장치가 전무하다시피 해도 괜찮았던 뮤지컬 <시카고>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저 보고 즐기는 뮤지컬. 문제가 있다면 디즈니의 뮤지컬은 감정 대신 볼거리의 클라이맥스를 관객의 마음에 남기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보다 어떻게 하면 이전보다 놀라운 볼거리를 만들까를 고민한다는 점이었다.

볼거리의 클라이맥스, <라이온킹>

뮤지컬 <라이온킹> 공연 모습

최고의 디즈니 뮤지컬로 꼽히는 <라이온킹>은 이런 딜레마를 장점으로 이용한 뮤지컬이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프로듀서였던 슈마허가 참여한 <라이온킹>은 배우가 촛대며 먼지떨이를 달거나 주전자를 드레스처럼 입고 연기해도 어색하지 않았던 <미녀와 야수>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진짜 사람이라고는 한명도 나오지 않고 사바나를 배경으로 만들어야 하는 <라이온킹>에는 또 다른 재능이 필요했다. 슈나이더와 슈마허는 그 재능을 줄리 테이머에게서 발견했다. 여러 전위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특히 퍼펫과 가면의 대가였던 테이머는 <라이온킹>의 연출 제안을 받고 “그들은 내가 너무 멀리 나가지 않을까 걱정했고, 나는 그들이 디즈니여서 걱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인도네시아 민속극의 영향을 받았던 테이머는 배우가 허리를 곧게 펴면 모자처럼 얼굴 위에 달려 있지만 위협하듯 몸을 숙이면 낭창거리며 내려와 얼굴을 덮는 가면을 만들었다. 막대기 끝에 달린 가젤 인형을 들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배우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사바나의 가젤떼가 되었고, 네개의 장대 위에 엎드려 애크러배틱 같은 곡예를 선보이는 배우는 기린 가면의 목과 몸통 사이에 드러난 얼굴을 대수롭지 않은 얼룩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테이머는 거기에 더해 대초원의 아우라를 불어넣는 데도 성공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들소떼의 질주나 생명을 존중하게끔 한 심바의 장엄한 탄생제의는 자칫 서커스로 전락할 수도 있었을 <라이온킹>을 시대의 스펙터클로 끌어올렸다. 아이즈너는 “우리는 <라이온킹>으로 뉴욕 지식인 커뮤니티에 충격을 던졌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것이 오만한 아이즈너의 자족이었을지는 몰라도 <라이온킹>은 디즈니가 뮤지컬 사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이전에 아이즈너는 뮤지컬을 제작하며 행복해하는 슈나이더와 슈마허에게 “그것도 좋지만, 극장 한개에서 하는 사업보다는 수천개의 극장을 상대하는 사업에 신경을 쓰라”고 충고하곤 했다. 그러나 <라이온킹>은 영국과 네덜란드와 일본을 비롯한 수십개국에서 공연됐고, 보다시피 한국에서도 공연되고 있으며, 죽의 장막을 뚫고 상하이까지 도달했다.

고액의 제작비와 ‘디즈니’식 스토리

이처럼 전세계를 정복한 디즈니 뮤지컬은 이미 대본과 음악이 반 이상 완성되어 있는데도 1천만달러가 넘게 들어가는 제작비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디즈니는 뮤지컬 제작비를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간소한 규모에 속하는 <아이다> 제작비가 1천만달러이고, <타잔> 제작비는 2천만달러에 가까우리라고 평가되어왔다. 그것은 디즈니가 기술적인 부문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타잔이 덩굴을 잡고 허공을 가르는 뮤지컬 <타잔>은 배우들이 허공에서 뛰어놀며 관객도 붙잡아올리는 <델라구아다>의 연출 핀천 발디누를 영입했지만, 그조차도 무대장치가 없는 <델라구아다>와 달리 온갖 기계와 배경을 피해다녀야 하는 <타잔>에는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첫 번째 티켓 오픈 당시 제작비를 대부분 회수했다는 소문과 함께 <타잔>은 디즈니의 실패작으로 기록됐다.

<아이다>

디즈니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아무리 연령을 낮춘다고 해도 성인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뮤지컬치고는 행복한 이야기만 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디즈니가 처음으로 창작을 시도한 <아이다>는 아프리카의 석양빛에 검은 윤곽으로 드러나는 인물과 패션쇼인가 하는 의심이 될 정도로 다양한 패턴을 시도한 의상이 아름다운 뮤지컬이다. 그러나 <라이온킹>에도 참여했던 엘튼 존은 원작인 베르디의 오페라가 너무 무거웠던지 지나치게 가벼운 팝으로 공연을 뒤덮었고, 강박에 가까운 해피엔드도 가장 아름다운 비극 중 하나인 <아이다>의 러브스토리를 희화화하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미국과 한국 공연에서 배우의 연기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면 그것은 단순히 배우만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디즈니는 신작 소식을 발표할 때마다 간절하게 티켓 오픈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뮤지컬들을 만들고 있다. 지금 20, 30대 어른들은 어린 시절 포크로 머리를 빗던 귀여운 아리엘의 <인어공주>를 보고 자랐고, 앞으로 어른이 될 아이들 또한 자기가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하던 우주비행사 버즈의 모험 <토이 스토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인어공주>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처럼 원작의 보물단지를 소유하고 있는 디즈니는 안전한 한계 내에서 신선한 재능을 발굴하는 모험도 해왔다. 줄리 테이머가 그런 경우이고, <오페라의 유령> <캐츠>처럼 장엄한 뮤지컬의 제작자인 카메론 매킨토시와 <메리 포핀스>를 공동제작한 경우도 비슷하다 하겠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나라가 있다고 우겨온 디즈니가, 슈나이더가 떠나고 홀로 사업을 맡고 있는 슈마허가, 제작비와 수익이 반비례 곡선을 그리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전례를 피해갈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과 달리 뮤지컬은 10년도 공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질문에 대한 어렴풋한 대답일 것이다.

국내에서 공연하는 <라이온킹>

웅장한 스펙터클과 미니멀리즘의 미학

<라이온킹>은 디즈니가 제작한 뮤지컬들이 대부분 그렇듯 무대라고는 믿기 어려운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우들의 신체와 가면을 이용하여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의 동물떼를 재현한 감독 줄리 테이머는 아마도 <라이온킹>의 단순한 스토리 덕에 자유로운 무대를 창조하는 데만 힘을 쏟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라이온킹>은 이집트의 저승신 오시리스 신화와 <햄릿>을 섞어놓은 듯한 이야기다. 아기사자 심바는 사바나의 제왕인 아버지 무파사의 보호를 받으며 씩씩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질투와 권력욕에 휩싸인 무파사의 동생 스카는 심바를 이용하여 무파사를 살해한 다음 심바에게 죄책감을 불어넣는다. 홀로 고향을 떠난 심바는 태평한 성격을 가진 멧돼지 품바와 미아캣 티몬을 만나 친구가 되지만, 언제나 자신을 되찾고 싶다는 상실감을 지닌 채 살아간다. 줄리 테이머의 손을 거친 <라이온킹>의 무대는 생기있는 색채를 품었던 원작 애니메이션과도 비슷하지만, 때로는 미셸 오슬로의 <키리쿠> 시리즈처럼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배경과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풀잎 모양 모자를 쓰고 살색 타이츠를 입은 배우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심바와 친구들 주위를 맴도는 모습은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라이온킹>이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라이온킹>은 가벼운 팝뮤지컬에 가까운 다른 디즈니 뮤지컬에 비해 아프리카 음악이 가미되어 웅장한 느낌을 갖는 코러스의 뒷받침을 받고 있기도 하다. (12월31일까지(제1기공연)/ 샤롯데극장/ 02-423-8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