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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있수다] 함께한다는 것 혹은 책임진다는 것
장미 2006-11-10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안고 자면 포근하고 베고 자면 편안한 덩치있는 녀석으로. 지나가는 말투로 오랜 숙원을 꺼내놓자 주변에서 하나같이 잔소리를 늘어놨다. 쉽게 말하면, 네가 어떻게 애완동물을 관리하겠냐는 거였다. 내게는 그 사람들의 입에서 생략된 말이 더 크게 들려왔다. 이렇게 정신없는 네가, 네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네가, 바쁠 땐 세끼 밥조차 잊는 네가, 네 방 청소도 안 하고 사는 네가, 새벽까지 회사에 눌러앉기 일쑤인 네가 등등.

얼마 전 단짝 친구가 집으로 가는 길에 토끼를 샀다고 했다. 까만 놈과 하얀 놈, 이렇게 두 마리인데 아주 귀엽고 예쁘단다. 지난주 회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생각나 전화를 걸었는데 하얀 놈은 건강하지만 까만 놈은 죽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친구의 목소리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차창 밖을 보고 있으려니 친구가 토끼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한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두려운 것은 의무다. 밥 주고 놀아주고 안아주고 씻겨주는 의무. 아플 때도 화날 때도 슬플 때도 다정하게 사랑해야 할 의무. 녀석이 죽어갈 때 그 곁을 지켜주고 가끔 녀석과 함께한 기억을 꺼내보며 추억해야 할 의무. 무엇보다 싸늘하게 식은 녀석을 정리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을 의무. 친구와의 짧은 통화는 주인이란 이름 아래 행해야 할 수많은 책임들을 현실적인 무게로 불러왔다. 그래,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장난이 아니다. 나와 전혀 다른 영혼을 곁에 두는 진지한 일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홀로 감당하겠다 말해봤자 어머니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정이 들고 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져야 하고 녀석이 아프거나 죽으면 나 역시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스러움에 혹해 함부로 생명체를 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고 보면 순간적인 기분에 좌우돼 나는 얼마나 많은 과오를 저질렀던가. 조금 늦더라도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생기는 날, 그날엔 내 마음에 쏙 드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