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때의 부산을 놓치면 후회한다며 L은 나의 손을 이끌었다. 밤이 깊도록 이어진 술자리, 바다가 보이는 파티오에 앉아서도 그는 고향 자랑에 바빴다. 외국서 만난 이들은 서울보다는 부산을 기억한다며 서울은 도시도 아니라고 하는 그를 보며 타향살이가 고단했겠단 생각이 들 즈음 고작 하루 아니면 이틀을 지내러 온 일탈의 도시에서 나는 두고 온 고향, 서울이 그리워졌다. 꽃피는 산골이 아니더라도 ‘고향’이란 단어가 환기하는 향수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 태어나 밟고 자란 땅, 지금까지 1년 이상 서울을 떠난 적 없는 나에게 고향은 향수라기보다는 일상이다.
어쩌면 서울이 아니라 일상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계획 없이도 들를 곳이 있는 일상의 공간. 태양빛과 함께 빛나는 바다가 없어도 혼자 남겨짐을 두려워하거나 시간을 보낼 사람을 찾을 필요없는 익숙한 공간으로서의 서울이 그리웠다. 때맞춰 부산의 날씨는 무섭게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축제를 위해 준비되었지만 익숙하지 못한 공간 속으로 빠져들지 못했고 그래서 외로웠다. 나의 서울에는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쳐도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스치고, 아파트 단지 출입키를 공유하면서도 옆집 아이가 몇살인지 남편이 무얼 하는지는 모르는 게 더 편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퍼즐의 빈자리에 그 조각 말고는 맞는 것이 없듯 내 그리움의 빈자리에는 익숙함의 총체인 서울 말고는 맞을 것이 없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겨도 일상의 온도를 유지하는 도시의 이중성 속에서 즐겨온 안락한 고독, 군중 속에서 혼자 있어도 느끼던 편안한 무책임이 한마디에 열 마디로 대꾸하며 깊어간 축제의 밤에 자꾸만 떠올랐다.
가린 것 없는 부산의 하늘을 보면서 나는 빌딩숲 사이로 보이는 조각하늘을 기억해냈다. 충분한 햇살을 받고 자라 무성한 녹음을 보면서 볕을 찾아 어설프게 뻗어난 서울의 가로수도 떠올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지금(now), 여기(here)에서 내가 만난 것들을 향유하지 못하고 결핍된 어떤 것들을 그리워하는 나에게 심술도 났다. 나는 항상 지금 없는 어떤 것들을 그리워만 하면서 사는 건 아닌지. 부산에 가서야 서울 생각을 하고 서울에선 또 다른 어떤 곳을 그리워하면서. 이런 나에게 영원한 고향이란 게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