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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에서 승리한 여신을 발견하다, <해변의 여인>
ibuti 2006-11-06

밤, 선희와 하룻밤을 보내던 중래는 술에 취해 모텔 문을 두드리는 문숙 때문에 놀란다. 새벽, 문숙을 피해 옆의 빈방으로 넘어가 선희를 보낸 중래는 문 앞에서 자고 있는 문숙에게로 돌아온다. 보기 드물게 괴상한 이 장면은 거의 신화적 풍경을 연출하는데, 쾌락의 정원에서 노닐다 귀환한 탕자는 ‘사람을 넘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의 죄의식은 지옥 유황불의 형벌이 아니라 ‘육체에 취해 이성이 잠잘 동안 괴물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기인한다. 극중 감독은 자신이 그런 나쁜 이미지와 싸우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게 홍상수의 것이든 보통 남자의 것이든 고백이란 고심 끝에 어렵게 나오는 법이다. 어색한 상황을 묘한 자연스러움으로 넘어가던 홍상수의 영화가 <해변의 여인>에선 어딘가 쥐어짜는 듯한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결과 <해변의 여인>이 여자의 영화로 완성된 건 아이러니다. 지옥을 두려워하는 남자를 비웃듯 여자는 지옥이 지루한 곳이라 말한다.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에서 승리한 여신을 바라보는 건 예상치 못했던 발견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마음 같아선 그녀의 차를 뒤따라가 물어보고 싶지만 곁에 둔 욕망의 실타래를 푸느라 바쁜 사람에겐 그럴 겨를이 없다. 처음엔 <해변의 여인>이 추운 봄에 만난 <오! 수정> 같았다. 그렇지만 홍상수 영화에 동어반복이란 없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만났던 ‘해변의 여인’을 여름 지나 가을에 재회할 때의 기분, <해변의 여인>을 DVD로 다시 만나며 드는 흥취는 그렇다. DVD는 일부 장면에서 싱크가 미세하게 안 맞는 걸 빼곤 평균적인 수준을 보여주며 간략하고 깔끔한 부록들을 담고 있다. 메이킹 필름(23분)은 장면별로 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과 보기 힘든 촬영 종료 뒤의 뒤풀이 광경을 수록했으며, 스탭 인터뷰(13분)에선 촬영감독 김형구와 음악감독 정용진이 영화와 감독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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