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슈레거의 정물사진 시리즈는 포근하고 따뜻한 감성을 전한다. 이미 새, 식물, 꽃 시리즈 등의 정물작업을 통해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해온 사진가로 널리 알려진 빅터 슈레거. 그의 최근 사진작품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그의 정물 시리즈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책’시리즈가 출품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Composition as Explanation’라는 전시부제에서도 짐작되듯, 책이 갖는 무형의 의미보다는 시각적인 구성과 배치로 드러나는 조형성의 하모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흔히 책이 전하는 첫인상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대변한다. 그래서일까 책이 전하는 상징적인 의미는 무척 담대하고 함축적이며 알 수 없는 깊이에 큰 기대감을 유발시킨다. 하지만 빅터 슈레거가 주목하는 책의 성질은 좀 다르다. 그의 사진은 글과 그림이 내재된 책의 본질적인 원형을 넘어 하나의 정물적인 객체 혹은 텍스트로서 책을 바라본다. 책의 외형을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조합의 원칙을 바탕에 두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뷰파인더를 통과한 책의 이미지는 하나같이 부드럽고 감성적인 온기로 가득하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대상을 결코 단조롭지 않게 만들어내는 빅터 슈레거 사진만이 갖는 매력은 어디서 오는가?
그는 주로 일반 사진인화지가 아닌 수채화지에 중간톤의 균일한 부드러움이 일품인 피그먼트 프린트(Pigment Print) 기법을 사용한다. 이 덕분에 슈레거의 ‘책’ 시리즈 사진들은 추상과 반추상의 경계에 놓인 회화작품을 연상시키며, 일반 사진이 지닌 건조하고 날카로움은 희석되어 전혀 색다른 감흥을 전한다. 여기에 정돈된 직육면체들이 연출해낸 ‘배합(arrangement)의 공간감’은 극적이면서도 조화와 균형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자아낸다. 마치 본형인 책의 내면에 담긴 글과 그림들이 갖가지 색을 입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선 것처럼 흥미롭다. 얼핏 보기엔 슈레거의 정물사진 책 시리즈는 도시적인 구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적절하게 내려앉은 정적인 무게와 회색도시의 구조적 속성을 닮아 있으면서도, 그가 전하는 색감의 체감온도는 36.5℃, 우리의 체온과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듯 빅터 슈레거의 책사진 시리즈에선 색의 역동적인 변주를 적절하게 조절해낸 시각적인 부드러움이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사진가 빅터 슈레거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등에서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예술가를 위한 국가기금과 뉴욕 구겐하임 장학금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폴라로이드 인터내셔널 컬렉션, 국제사진센터,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