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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국영화 7편 [2] -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김혜리 2006-10-24

두 수컷의 구불구불 여행길

김태식 감독의 첫번째 장편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기사와 승객. 두 남자가 탄 택시가 구불구불한 국도를 나른하게 미끄러져 나간다. 왜소한 손님의 이름은 김태한(박광정). 강원도 양양군 낙산읍에서 도장포를 경영한다. 잘생긴 서울 택시기사 박중식(정보석)은 대문만 나서면 곧장 애인 중 한명과 마주치는 바람둥이다. 전국에 분포한 중식의 숱한 연인 중에 태한의 아내도 있으니, 질투로 속이 곯은 남편은 어제 마침 ‘씨팔’이라는 두 글자를 붉은 낙관에 새겨 내리찍고 떨쳐 일어섰다. 서울까지 달려온 그는 중식의 멱살을 잡는 대신 낙산행 장거리 주행을 주문한다. 밀회를 부추겨 현장을 덮칠 궁리지만 어떤 놈인지 좀 볼까 싶기도 하다. 영화는 심리적인 자승자박 상태에 빠진 태한의 눈에 비친 국도변 풍경을 스케치한다. 두 남자의 낙산행은 슬슬 몽롱한 소풍이 된다.

긴 우회로를 거친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첫 장편인 김태식(47) 감독은 스스로 “세월이 꿈을 앞지른 경우”라고 말한다. 1960년대 한국의 카레이서로 맨땅에 트랙 깔아가며 고된 길을 걸었던 감독의 부친은 “한발쯤 앞서가면 남들이 맞춰주지만, 너무 달려나가면 그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아들에게 일렀다. 아들은 마흔다섯살 즈음 감독이 되고자 했다. 서울예대 79학번이었던 그의 시대엔 충무로 도제수업을 거친 노숙한 감독들이 주류여서 영화감독이란 중년에나 가당한 성취로 보였기 때문이다. 1980년 일본으로 날아간 김태식 감독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설립한 일본영화학교 1기생이 됐다. 다시 홍콩행을 꿈꾸며 어학연수를 떠난 호주에서 JAC라는 일본 회사와 연이 닿아 발들인 해외 제작 코디네이션 일이 10년 넘도록 그의 생업이 됐다. 과연, 이 우회로가 목적지에 닿긴 하는 걸까 초조해질 무렵 김태식 감독은 박철수 감독의 <가족 시네마>(1998) 라인 프로듀서를 지원했고 연출부로 발탁됐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영진위 제작지원과 일본 제작자의 투자로 성사됐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아스팔트 알레르기>라는 중편 아이디어에서 커브를 튼 이야기다. 중편의 주인공은 불을 켜놓아야 잠을 이루는 여자와 동거하는 택시기사. 새벽마다 전등을 끄며 출근하는 그는 어느 날 옛 애인을 만나 종일 바람을 피우고 돌아와 동거녀의 등을 바라보며 “혹시 그녀도 내가 없는 동안?”이라고 상상한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도 ‘엿보기’다. 태한은 약한 수컷이 강한 수컷을 곁눈질하는 느낌으로 중식을 훔쳐보며 “내 아내에게도 저랬겠지!” 치를 떤다. 낙산에 도착해 못 볼 꼴을 보고도 태한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다시 상경한 태한이 아내의 애인의 아내인 소옥(조은지)을 만나고 나서야 모종의 안식에 다다른다. 일부일처제는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다른 제도 안에서도 남녀는 번민할 것이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태한과 중식이 상극이 아니라 모든 남자가 상황에 따라 쳐드는 두 얼굴이라 믿은 감독은 구태여 두 남자의 재회를 에필로그로 넣었다. 중식은 심지어 따진다. “왜 그리 냉정한 거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이야기와 이미지, 음악은 “황당하지만 있을 수 있는” 리얼리티의 눈금을 지킨다. 광각렌즈를 선호하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구도는 인물의 움직임을 어딘가 가소롭고 구슬프게 만든다. 렌즈의 속성을 아직 잘 모른다는 김태식 감독은 다만 사물과 인물이 원하는 사이즈가 되는 순간에 주목했다고 한다. 근심도 시간도 많았던 신인감독이 장장 4개월을 편집실에서 버티며 닳도록 매만진 이 늦둥이 입봉작은 1초 1초를 귀애하며 효과를 고심한 영화이며 모파상의 단편이 그렇듯 한없이 쓸쓸하지만 주도면밀한 희비극이다.

출연배우들

박광정ㆍ정보석ㆍ조은지ㆍ유연수ㆍ오달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든 배우 박광정과 정보석은 상대방 역할이 자기 몫인 줄 알았다고 한다. 박광정은 소신있게 남의 아내를 꾀는 바람둥이(<넘버.3>의 랭보를 생각해보라)가 자신인 줄 알았고, 정보석은 소심한 남편 역이겠거니 했다. 관객은 이 영화에서 전에 없이 가까이서 박광정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 박광정이 “다가갈수록 ‘예쁜’ 얼굴”이라고 말하는 김태식 감독은 극단적 클로즈업을 적극 썼다. 스탭들은 “한국의 우디 앨런”이라고 감탄했다고. 같이 사는 남자(정보석)의 바람기에 애타는 소옥 역의 조은지는 완연히 빛을 발한다. 거침없고 철없는 여자 역은 언제나 이 배우의 장기였으나 이번엔 거침없으되 원숙하기까지 한 여인이 그녀를 통해 웃고 울고 노래한다.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거의 완창하는 부분이 백미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는 정보석, 박광정과 연극 <아트>에서 공연한 유연수, 오달수도 노래방 주인, 강원도 택시기사로 우정 출연했다. 오달수는 특유의 자문자답형 말투를 살려 차내의 어색한 공기를 깨보려는 기사의 외로운 시도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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