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미자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한고은이 열연하는 그 미자말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미워하다니 엄청 한가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의 시름이 깊을수록 믿고 의지할 건 텔레비전밖에 없다는 옛 성현의 말씀도 있지 않나.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겠지만 딱 하나, 아주 죄질이 나쁜 사랑이 바로 미자가 태준에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곁에 있을 때는 온갖 무시와 외면으로 상대방의 인내를 시험하다가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순간 돌아와달라고 매달리는 건 사실 사랑이 아니라 ‘나 갖긴 싫은데 남주긴 아까워’병의 발작 증상에 불과하다. 미자와 태준의 재결합 이후 벌어지는 파탄의 풍경을 보라. 여기부터는 시청을 중단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정신건강이니까.
그래서 한동안 평화로웠던 나의 마음상태를 다시 발칵 뒤집어놓은 미자의 이란성 쌍둥이가 등장했으니 <봄의 눈>의 주인공 키요다. 키요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토코에게 매몰차게 대한다. 그저 거절하는 게 아니라 사토코에게 없는 말을 지어 자기가 유곽을 전전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가장 친한 친구와 사토코를 맺어주려고도 한다(아, 미시마 유키오!). 결국 사토코가 모든 걸 포기하고 황족인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는 순간 그는 사토코의 유모를 협박해 사토코와 만난다. 그리고 남들의 눈을 피해 여관 같은 곳을 전전하면서 사토코와 금지된 연애를 시작한다.
영화는 끝내 실패하고 마는 이들의 사랑을 슬픈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다. 모든 파탄은 키요가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는 사토코와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자기 발로 차버린 다음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징징거린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노는 고무줄을 끊는 건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정리할 일이다. 그런데 나잇살이나 먹은 어른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그건 사랑이었어요” 외치는 건 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 쓰마부키 사토시라 할지라도 <봄의 눈>의 키요가 괴로워하는 건 연민을 주지 못할뿐더러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을 때 “쌤통”이라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눈물, 콧물 빼고 있을 세상의 미자와 키요 들이여, 인면수심이란 꼭 강간범한테만 쓰이는 말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악행을 중단하시라. 안 그래도 세상은 고달픈 일투성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