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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불량한 경험

최근 영국에서 200여년 전에 네덜란드인이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 수집한 씨가 발견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형편없는 조건하에서 보관되었는데도, 물을 뿌렸더니 씨 몇개가 싹을 틔워 긴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여정 끝에 잠에서 깨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자라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할 때 한참 상상했다. 1803년 당시에 얀 테르링이라는 상인이 무거운 가죽가방을 들고 먼 아프리카 끝에 갔다 온 장면과 그렇게 시끄러웠던 19, 20세기에 걸쳐 조용히 런던 타워 보관실에서 가만히 있었던 씨들. 갑자기 2006년에 와서 누군가가 그놈들에게고 물을 좀 뿌렸더니 막 부활하는 이 자연의 기적은 참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 최첨단 컴퓨터보다 더 놀라운 자연의 영원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말이다. 자연은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한다!

요즘 사람의 마음과 뇌에 관한 연구가 많아서 사람의 내적 생활세계에 대해서도 놀라운 사실들이 알려진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머리 안에서 이성적 뇌와 원시적 뇌의 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갈등에 따라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비합리적 행동을 하게 된다. 즉, 원시시대에서 현재까지의 진화과정에서 결국 이성적 뇌가 생겼지만, 뇌의 원시적 부분이 아직도 지배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 안의 원시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매일 <9시 뉴스>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이미 프로이트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아인슈타인이 “인간이 어떻게 전쟁 같은 야만적인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인간은 원래 원시인인데, 문명화되면서 원시성이 문명의 층으로 덮인 것뿐이지, 지워지지는 않았단 설명이다. 즉, 극단적인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원시적 뇌의 기능이 다시 살아난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경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 상황은 이미 충분하다. 위험하거나 아찔한 순간에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뇌의 동물적인 부분이 활성화되어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반응해서 자신을 살린다.

뇌의 같은 부분에서 다양한 욕심과 감정이 자극된다. 1976년에 우주선 바이킹 1호가 화성 표면을 찍은 사진 중에 이른바 ‘화성얼굴’이 발견되어 한참 놀랄 거리였다. 1998년, 2001년 그리고 최근에 같은 지역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단지 착시현상에 속은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지만, 화성에 외계문명의 대형 얼굴과 피라미드가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직 있다. 하긴 미국 네바다 사막 지하에서 미군과 외계인이 같이 쓰는 10층 넘는 지하 종합청사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우주의 무한과 외계인, 즉 타인의 존재 가능성은 늘 인간의 환상을 자극해왔다. 때문에 독일에서 쓰는 말 중 약속 시간보다 너무 어긋나서 나타나면 ‘시계를 달에 맞췄냐?’ 하고, 무엇을 좀 모르면 ‘달 뒤에 사냐?’하거나 심한 경우 ‘다른 별에서 온 애인가보다’라고도 한다. 맛이 완전히 간 것 같으면 ‘(화성에서 온) 작고 녹색의 사람 보이냐’는 화살도 받을 수 있다. 정말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래, 태양이 세계를 돈다’거나 ‘지구다 평판이다’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그럴 만한 사건이 터졌다. 타이 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논평에서 “노무현 정권은 타이의 쿠데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비교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특히 어두운 군부독재시대에 뿌리를 둔 ‘보수’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은 단지 못마땅하다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5·16, 유신, 12·12, 5·18 등등의 군대반란 사건의 역사를 둔 가운데 몇년 전에 마치 국내 쿠데타를 선전하는 듯한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이든 탄핵 때 군부 쿠데타를 선동한 김용성 교수이든, 밤하늘로 올려다볼 때 반드시 화성에 얼굴을 보는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 많다니, 정말 놀랍다! 아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자연의 굉장한 생존의지뿐이다. 그러나 싹이 틀 때까지는 203년보다 훨씬 더 짧은 45년 만이며, 주지하듯 증오의 씨앗으로부터 아무런 선도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