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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할 때 가장 예쁜 우리의 솔메이트, <타짜>의 배우 이수경

솔메이트. 영혼의 동반자라니. 그보다 더 낯간지러운 단어가 있을까. 하지만 마법처럼 다가온 상대 앞에서 여자는 그의 품에 안기는 대신 불편한 현실로 돌아갈 것을 선택한다. 운명을 믿되, 자신의 의지에 대등한 무게를 부여하는 것. MBC 시트콤 <소울메이트>는 사랑을 향한 대책없는 환상도, 불모의 냉소도 거부하는 새로운 사랑학을 내밀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신드롬처럼 퍼져나갔던 그 사랑학의 중심에 이수경이 서 있었다. 털털하고 실수투성이에 때론 안쓰러울 정도로 어설프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여자. <타짜>의 화란은 이수경의 눈가에서 눈물을 걷어내고, 한층 단단하고 견고한 외피를 둘러주었다. 승부의 짜릿함에 모든 것을 내건 남자 고니(조승우)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란은 도박판의 큰손 정 마담(김혜수)과 맞붙어 팽팽한 신경전을 펼칠 만큼 당돌하고 야무진 여자다.

“과연 제가 화란 역을 맡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신인이 저밖에 없잖아요. 최동훈 감독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자 생각했었죠.” 기대하지 않았던 오디션.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며칠 뒤 화란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발랄하고 통통 튀는 면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감독의 말이었지만, 현장에 들어선 그는 말 그대로 바짝 얼어붙었다. “백윤식 선배님, 김혜수 선배님, 조승우 선배님… 너무나 뛰어난 분들이시잖아요. 저 하나 때문에 영화가 이상하다는 이야기 들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쟁쟁한 선배들 틈바구니에 선 신인의 불안함에 첫 영화의 떨림까지. 긴장은 그가 떨쳐내야 할 가장 큰 짐이었다. “제 첫신을 잊을 수가 없어요. 택시를 타고 가던 고니가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화란을 발견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건데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온몸이 완전히 경직되서 꼭 로봇 같았어요. (웃음)”

심호흡을 하고, 관절을 풀고, 대화를 하고. 얼음장 같던 긴장을 차츰 녹여내면서 이수경은 그 이상의 능숙함이 탐나기 시작했다. 고니의 머리를 잘라주는 장면을 위해 미용실에서 수업을 받던 그는 미용 가위를 하나 얻었다. 그 뒤로는 이동할 때도 가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모니터하며, 자연스러운 동작을 연구했다. 그래서였을까. 남의 옷을 걸친 양 어색하던 화란은 점차 이수경 자신과 동화되어갔다. 화란이 정 마담과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김혜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 그는 “고니 옷이 이게 뭐야. 애들같이”라며 빈정대는 정 마담에게 “듣던 것보다는 안 뚱뚱하시네요”라며 일침을 날린다. “김혜수 선배는 제가 원래 정말 좋아하던 배우죠. 근데 그 순간에는 떨린다기보다 그저 내 남자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수경은 미술학도를 꿈꾸던 소녀였다.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미대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재능이 부족해서인지 지원하는 대학마다 전부 다 떨어지더라고요.” 미술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할지 갈등하던 사이 그의 마음을 파고든 것은 연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동경해오던 배우라는 직업에 본격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몸도 많이 상하고 힘들 거다”라는 주변의 만류도 꽤 있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든 것도 상관없다”는 간결한 화답으로 모두 물리쳤다. 2003년 화이트 CF로 데뷔한 뒤, 이듬해 <알게 될거야>로 연기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이윽고 <하늘이시여>에 합류했다. 혀 짧은 소리로 호들갑을 떨던 구슬아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화제의 캐릭터로 떠올랐지만, 이수경은 곧 <소울메이트>로 철없는 공주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냈다. 그리고 <타짜>. 힘겹게 스크린 데뷔전을 치러낸 그는 아직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다. “화면으로 제 모습을 보는데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긴장한 티도 많이 나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요? 정말, 하나도 없어요.”

스스로 “원래 자기 비하가 심하다”고 말하는 이수경은 “못한 것만 눈에 들어온다”며 한숨을 내쉬지만, 그의 겸손은 사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은 제가 한 게 얼마 없잖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 연극, 드라마, 영화… 기회가 닿는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다 해볼 거예요.” 피아노, 수영, 요리, 태껸 등 손 안 대본 것이 없을 정도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이수경은 한번 무언가에 꽂히면 일주일 내내 그것에만 매달릴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배우로서 으레 탐내게 마련인 화려한 스포라이트를 향한 욕심은 없다. 존경하는 배우로 주저없이 임현식을 꼽는 그는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역할은 상관없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다른 말로 표현 하자면, ‘사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할까요.” 너무 소박한 바람 아닌가요, 질문을 던지자 활짝 핀 미소와 함께 상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편안할 때가 가장 예뻐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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