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기(氣)가 펄펄 넘치는 도깨비들이 등장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낮도깨비의 부릅뜬 시선, 울퉁불퉁 불거져 튀어나온 팔뚝의 힘줄, 두 주먹으로 한껏 움켜진 곤봉과 가시방망이 그러나 표정만큼은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다. 바로 민중화가 오윤의 트레이드 마크 낮도깨비다. 그의 도깨비는 민중의 전형이다. 마치 고단하고 힘겨운 삶의 무게를 이겨내면서도 짓누르는 불합리한 외세와 싸워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상징이다.
80년대 사회 변혁기에 등장한 민중미술은 판화가 오윤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20주기를 맞이하기까지 변변한 작가론 하나없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변방에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마련된 대대적인 기념전은 현대미술사에 ‘작가로서의 오윤’, ‘민중미술의 새로운 정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나아가 이번 전시의 남다른 의미는 극소수의 특화된 집단의 이익이 아닌 ‘보통서민’인 민중의 생각과 의지를 반영했던 순수한 예술행위로서 민중미술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중심에 소외된 이의 희망을 노래한 오윤이 있다.
이번 오윤의 작고 20주년 회고전 <낮도깨비 신명마당>은 전시제목에서 연상되듯, 그의 분신이기도 한 낮도깨비가 신명나게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오윤’, ‘한 인간으로서의 오윤’을 동시에 조명하는 입체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특히 회고전에는 그의 대표작인 판화 140여점과 다수의 유화뿐만 아니라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드로잉, 작업노트, 작업통판, 친필서신, 조각작품에 이르기까지 미공개 희귀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이로써 오윤을 처음 접한 관객이라도 그의 작가적 면모나 일상적인 삶의 모습, 작품제작 과정들을 한눈에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오윤의 미술사적인 평가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1946년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로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조소과 재학 시절부터 민중문화에 심취했고 탈춤, 민화, 불화, 무속화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인 미감을 현대적인 민족예술로 새롭게 조형화시키는 데 힘썼다. 특히 민중적 삶이 농축된 판화는 독보적이다. 이런 판화작업은 여러 출판작업에도 등장하며 김지하가 쓴 <밥>의 본문과 삽화에 사용되면서 대중적인 위상을 더욱 각인시킨다. 또한 69년에 ‘현실동인 제1선언’에 참여하고 1979년 ‘현실과 발언’을 주도하며 사회변혁에 대한 절실한 갈망을 예술혼으로 불살랐다. 그러나 엄청난 창작열정과 의지의 불꽃도 80년 이후 병고를 얻으며 잦아들어 결국 86년엔 영면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