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하오 마?” 혹은 “곤방와!”
세상 참 냉정하다. 한때는 중국인이었다가 졸지에 일본인이다. 예전에 방콕의 면세점 앞을 지나면 직원이 “니 하오 마?”라고 하더니 요즘엔 “곤방와!” 하며 웃는다. “니 하오 마?”와 “곤방와!” 사이에 나는 수염을 길렀다. 또 입성에 신경 쓰고, 행색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제는 심지어 이태원을 지나도 상인들이 “곤방와!” 하면서 호객행위를 한다. 나는 국적을 바꾸지 않아도, 그들이 나의 국적을 바꾸어버린다. 물론 의도한 바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당연히(?!) “니 하오 마?” 할 때 슬쩍 구겨졌던 나의 얼굴은, “곤방와!” 소리를 듣고선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 안의 인종주의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인의 이러한 습성을 “지엔피(GNP) 인종주의”라고 불렀다.
서울의 찬가
어쩌나, 갈수록 서울이 좋아진다. 머지않은 과거, 서울 하늘 아래서 님을 만날 가능성은 없다고 하늘을 우러러 원망했다. 오래지 않은 과거, 서울에서 못 찾으면 타이베이에서 찾고, 타이베이에도 없으면 머나먼 동남아라도 마다지 않는다는 각오였다. 그리하여 슬로건은 “애정의 대동아 공영권!” 그랬던 내가 변했다.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 갈수록 찾아가는 서비스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일본 손님, 홍콩 오빠, 타이베이 언니가 제발로 서울에 왕림하시니. 욘사마님의 은공이요, 레인 오빠의 공덕이다. 갑자기 용필이 오빠의 쌍팔연도 노래가 떠오른다. “소울~ 소울, 소울~ 아름다운 이 거리~.” ‘필’받아서 한곡 더!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서울의 클럽에서 화교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이제는 척 보면 딱 안다). 눈빛이 오가고 인사를 건넸다. 나의 가난한 영어(Poor English)로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싱가포르에서 왔단다. 싱가포르에 화교들만 살지는 않는다는 인구학적 지식을 과시하다 실례를 범했다. “차이니즈 아니면 말레이시안?” 그가 나를 살짝 흘겨보며 말한다. “어디로 봐서 말레이 같니?” 그래, 네 안에 나 있다.
원 나이트 인 방콕
방콕의 거리에서 화교 청년을 만났다. 방콕 클럽에서 안면을 익힌 청년이다. 외로운 여행객은 말이 그리워 말을 섞었다. 우리가 앉은 카페 앞을 타이 청년들이 서성였다. 급만남을 기다리는 그들을 보면서 청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괜히 지나는 타이베이 청년에게 중국어로 인사를 건넨다(그들도 아는 사이다). 그리고 타이인을 보면서 점잖게 한마디 덧붙인다. “음…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저 애들은 왜 그렇게….” 말의 행간이 읽힌다. 번역하면 이렇다. 나의 경험으로, 동남아에서 “나는 화교야”라는 말을 뒤집으면 “현지인이 아니야”라는 뜻이 된다.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니라는 강조다. 더구나 이슬람 국가의 화교들은 “나는 부디스트”라고 강조한다. 역시 말의 이면에는 “무슬림이 아니야”라는 부정이 숨어 있다. 그리고 한마디 묻는다. “너도 부디스트지?” 아니라고 하면 실망할 기색이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무슬림도 아니라고 하면, 그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친다. 이번엔 타이인을 만났다. 그가 묻는다. “어디서 왔니?” “코리아.” 이어서 그가 답한다. “굿 이코노미.” “….” 탁월한 서바이벌 잉글리시로 또다시 그가 묻는다. “타이인 (파트너로) 좋아해?” “….”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궁색한 변명을 찾는다. “서양인은 별로고, 아시아인을 좋아해.” 이렇게 노회한 아저씨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편견을 숨기는 방법을 익혔다.
어느 날 방콕에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야, 일본애들은 공짜래.” “정말로?!” 수십 차례 드나들면서 수천 바트를 바쳤던 방콕 클럽에 처절한 배신을 당했다. 타이인들에게는 회원증까지 발급하면서 물관리를 하고, 한국인에게는 꼬박꼬박 입장료를 징수했던 클럽이 일본인에게는 “어서 옵쇼” 하면서 공짜로 입장을 시켜주었다는 말씀. “곤방와!” 한마디면 무사통과였다는 전언이었다. 그토록 애용하던 클럽에 그토록 처절한 차별을 당하다니, 정말로 기분이 상했다. 일찍이 자업자득, 인과응보라 했다. 당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