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소쿠로프는 20세기 말에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20세기의 가장 악명 높은 지도자 혹은 저주받은 권력자를 주인공으로 4부작을 연출하겠다고 밝혔다. <몰로흐>와 <더 선>은 그 첫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한다(두 번째는 레닌이 주인공인 <황소자리>). <몰로흐>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측근들에 둘러싸여 바이에른 알프스 산중의 음울한 요새에서 1942년의 하루를 보내고, <더 선>에서 천황 히로히토는 1945년 2차대전 패전의 날 지하 벙커와 실험실에서 나와 미국의 맥아더 장군과 만남을 가진다. “예술로서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불가해하다”는 소쿠로프의 말대로 <몰로흐>와 <더 선>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이며, 회화와 꿈과 시가 뭉친 전작들의 우울한 이미지 또한 여전하다. 먼저, 세 연작은 역사적 사실을 비평하거나 한 인간을 단죄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감독은 20세기의 비극적인 사건의 핵심에 위치한 그들을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배경으로부터 분리해 각자의 개인적 욕구와 동기로 해부한다. 소쿠로프는 이를 인간 특질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탐구라 말했는데, 세 인물의 유명세로 인해 이러한 탐구는 논란거리가 될 여지가 크다. 그러나 다시 말해 세 연작은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이해하려는 희귀하고 위험한 시도라기보다 그들의 문제적 자질에 관한 실험이자 권력의 특성에 관한 연구다(그러니까 역사적이고 윤리적인 시각에서의 반론이나 문제제기는 영화 밖의 다른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들은 대의에 따라 행동하고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사내들이 아니라 나약한 영혼을 숨기지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남자들로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이 역사적 비극의 시작이라 말한다. <몰로흐>의 히틀러에 비해 <더 선>의 히로히토가 훨씬 인간적이고 복잡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나, 설령 그가 내면적으로 평화를 원했고 어린이처럼 연약하다 해서 그의 잘못된 선택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세 연작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비극에 관한 한 인간의 책임이며, 우리 각자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선이란 건 나약해서도 안 되고 어리석어서도 안 된다. 소쿠로프는 그러한 선만이 미래의 비극을 막는 인간의 자질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