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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이별, 그 참을 수 없는 아쉬움
이다혜 2006-09-22

한때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연애 중이었다. 29살이라 해도 이십대는 이십대였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십대거나 삼십대의 아주 초반이었다. 몇몇의 연애는 위태로웠고 몇몇의 연애는 뜨거웠고 몇몇의 연애는 안정적이고 포근했다. 나는 세 번째 연인들을 진심으로 동경했었는데, 내가 근본적으로 관계의 불안함을 쉽게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밀고 당기기”를 하느니 차라리 혼자 재미있게 지내자는 주의였고, 밀고 당기고를 세번 이상 하면 그때부터는 피곤해서 연락도 안 하는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안정적인 커플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안정적이라는 말 속에 사실은 권태나 귀찮음, 방관, 무관심 혹은 시간의 힘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들의 “현 상태”에만 주목했고 그 상태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공식적으로 삼십대가 되었고, 내 주변의 인간들 팔할이 빼도 박도 못하는 삼십대 초반 혹은 중반에 들어섰다. 커플인 사람보다 커플이 아닌 사람이 훨씬 많고(기혼자는 커플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부부다), 그나마 연애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뜨거운 것보다는 약간 위태한 상태를 지속하다가 헤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오늘, 내가 알고 있던 가장 부러웠던 커플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들었다.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만나자든가 술을 마시자든가 하는 말을 우물거렸다.

나는 그 연인을 진심으로 좋아했었다.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댈 수 있었지만 결혼해야 할 이유를 100가지쯤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새벽 3시, 클럽에서 놀던 우리를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던 날, 둘이 같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둘은 평생 저런 모습으로 내 앞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오래 함께 지내온 두 사람이니 눈앞의 문제들은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둘이 안 만난 지 오래됐다고 했다. 헤어졌다, 는 표현은 아니었다. 그 말 고르기 때문에 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만나지 않은 지 오래라. 나보다 어른인 그녀는,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가상의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 어린아이처럼 서운해하는 내게 따뜻하게 웃으며 “어린이를 실망시켜서 미안”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상주의적인 연애관을 갖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몇년간, 이상적이라고 하는 연인들이 파국을 맞는 광경을 몇번이고 목격하지 않았던가. 이상적이라고 추앙받았던 부부들 또한. 그러고 보면, 이상적이라는 틀로 그들을 가두는 것이야말로 못할 짓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건 덜 안정적인 커플만큼 싸우기도 하고, 언제든지 헤어질 수도, 바람을 피울 수도 있는 게 관계의 본성인데. 게다가 알고 보면 위태로운 것도 안정적인 것도 그 관계를 위한 최선의 방책일 뿐인 경우가 많더라. 여튼 올 가을에 연인인 사람들은 가능한 오래 (위태롭건 안정적이건을 떠나) 즐거운 연인으로 지내주길. 이제 주변에 솔로인 인간이 100만명이 된다 해도 밤을 새워가며 술을 마시고 춤을 추러 다닐 체력도 안 된단 말이다. 게다가 나도 결혼했단 말이다. …일이랑. 밤이고 낮이고 주말이고 온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비울 수 없는 생활이니 일하고 결혼했달 수밖에. 아, 이런 40대 기러기 아빠 같은 처량맞은 말로 이 칼럼을 맺어야 한다니 안구에 습기가 뿌옇게 차오르누나.